우리 부부는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의 핵심은 대화인데,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세 시간 정도 우리만의 산책 코스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또 내가 지방 강연을 하게 되면 아내도 연가를 사용해 함께 가는데, 자차를 이용하든 고속열차를 타든 마치 소풍 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하며 간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대화를 통해 우리 부부의 사랑 밀도가 높아진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걸까. 내 일과 아내 직장 이야기, 함께 읽거나 각자 읽은 책 이야기, 우리의 간절한 소망, 각자 신앙적으로 깨달은 이야기를 하며 힘들고 지칠 때 서로 토닥여주고 다시 믿음으로 설 수 있게 도와준다.

말하고 또 말해도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난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치유 받고, 회복하고, 성장한다. 아내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가장 큰 기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행복하고 감사한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유사성에 정비례한다. 유사성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종교이고, 두 번째는 신앙관이다. 이것이 어떤가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며 둘의 생각과 습관, 실천이 달라진다. 그래서 난 넌크리스천과 연애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진지하게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니라면 되도록 관계를 정리하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이 넌크리스천과 연애하고 결혼하며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마치 흡연과 음주를 하면서 오래 살길 바라는 것과 같다. 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는 느낌은 뇌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의 물질적 반응이다. 물론 이것도 사랑이다. 그걸 사랑의 아주 작은 단면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느냐의 가치 판단이 다를 뿐이다.

요즘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한 가지를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바로 ‘두 사람의 신앙관이 얼마나 비슷한가’이다. 쉽게 말해, 인본주의 신앙관인가, 신본주의 신앙관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전자가 사람을 위한 종교라면 후자는 하나님을 위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가’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는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둘 역시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렵다.

연애와 결혼도 신앙생활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신본주의 신앙관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따로, 연애와 결혼에서 보이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모습 따로인 사람은 인본주의 신앙관일 가능성이 크다(내가 단정 짓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자. 비록 지금은 부족해도 올바른 성경적 정보를 알고 난 뒤 회개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물론 신앙적인 견해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다름에서 오는 관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타협하지 않는 복음의 울타리’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나오는 종교 논리 역시 잘 분별해야 한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연애도 결혼생활도 거룩해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닌 의무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크리스천은 자아를 하나님께 ‘양도’한 자들이라 했다. 그 양도의 목록에는 당연히 연애와 결혼 문제도 포함된다.

아무하고도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애인과 배우자보다 나와 예수님의 일대일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연애할수록 예배자의 일상이 무너지는 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연애가 아니다. 반대로 연애 기간과 결혼 연차가 늘수록 나와 예수님의 관계가 성장하고 성숙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모습이라는 증거다.

사랑에 빠진 것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 착각하는 건 매우 다르다. 전자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후자는 ‘타인에게 투영시킨 또 다른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애착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 본질은 ‘무지’와 ‘교만’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 청년이 후자에 속한 가짜 사랑에 허덕인다.

창세기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감정의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또한 사랑은 곧 하나님(요일 4:8)이심도 믿는다. 세상이 그렇게 노래하는 ‘사랑’의 본체가 창세기의 하나님이시다. 전 인류의 사랑 저작권은 하나님께 있다. 그분이 사랑을 가장 잘 아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하는 큰 착각 중 하나는 하나님을 ‘구시대 관념에 꽉 막힌 늙은 할아버지’ 정도로 치부하는 거다. 어른 세대가 스마트폰 기능을 모른다고 여기듯 말이다(아이러니하게도 그 스마트폰을 어른 세대가 만들어냈다).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늘 발매된 최신 유행가 가사부터 올해 출시된 휴대폰의 숨은 기능 하나까지 다 아신다. 이 세상 모든 걸 그분이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하물며 오늘날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련된 무신론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물리력조차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에너지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물로 주셨다. 세상은 사랑을 섹스라고, 욕구의 충족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을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질투하지 않음과 자랑하지 않음과 잘난 체하지 않음과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음과 이기적이거나 성내지 않음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과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함이라고 말씀하셨다(고전 13:4-6). 나는 이걸 ‘밥 같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또 인간의 유일한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되며 완성된다고 믿는다.

밥 같은 결혼생활을 하려면 밥 같은 결혼 준비를 해야 한다. 밥 같은 결혼 준비를 하려면 밥 같은 연애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밥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밥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계발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아내보다 예수님을 영순위로 사랑하는 게 아내를 가장 잘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여태껏 옳다고 생각했던 자극적인 조미료를 모두 거둬야 한다. 당신의 연애의 열매는 음란인가, 거룩인가?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자다. 연애와 결혼 문제에 영적 에너지를 소진하지 말고, 그 너머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일어나 함께 가자.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책읽는사자의 신앙의 참견, 책읽는사자

† 말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고린도전서 13장 4~8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장 32절

† 기도
모든 것 위해 주님이 제 삶에 우선순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저와의 관계가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기도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성장하고 있는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며 결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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