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배우자 기도’란 뭘까? 꼭 해야 할까? 왜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언제나 매우 핫한 주제다. 청년의 때는 아직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기 전이라 본인이 체득한 행복과 고통의 주요 매개가 바로 ‘사랑’이기에 그렇다.

크리스천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신앙생활에 축복의 통로가 될 수도, 넘어짐의 통로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에게 올바른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배우자 기도는 청년들의 이런 정서적 배경에서 나타난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미래의 배우자에 대한 기도 목록을 되도록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 지도해주는 교회 어른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키는 적어도 180센티미터 이상’, ‘곱슬보다는 직모’, ‘대학원 석사 졸업 이상’, ‘중산층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 ‘영어는 기본적인 대화 정도는 가능한’, ‘연봉은 최소 4,000만 원 이상’, ‘인서울 아파트 전세로 시작하는 것까지는 오케이’, ‘꽉 막힌 시부모님은 절대 사절’, ‘해외여행은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 ‘전시회와 뮤지컬을 함께 볼 수 있는 예술적 소양’ 등을 적고 기도하는 청년들이 많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배웠다. 나름 진지하고 간절하다.

혹자는 사람의 됨됨이가 아닌 외형적 조건에 대한 기도제목이 너무 세속적이라며 그것만 아니면 괜찮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예비 배우자의 인격에 대한 리스트도 그 본질은 같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걸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므로.

안타깝게도 배우자 기도는 자신의 취향 저격 리스트가 아니다. 정성과 노력을 다하면 소원 성취를 해주는 요술램프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 즉, ‘우상숭배’다. 내 욕구를 영순위에 두는 나르시시즘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람의 인지능력과 진짜 영성의 수준은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많은 청년이 이런 자기 욕구를 하나님의 응답이라며 상대에게 신앙적 순종(=나와 사귀자)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저 예쁘고 잘생겨서 끌리는 것에 과도한 신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불행히도 이때 오용되며 왜곡되는 명분의 매개가 배우자 기도일 경우가 많다. 내 욕구 충족을 위해 섣부르게 하나님을 이용하는 거다.

만약 그렇게 사귀다 헤어지면 그 기도 응답의 출처는 과연 어디인가. 물론 사람이기에 실수한다. 그러나 그 표면적 실수 이전과 이후의 맥락이 갖는 인격의 진정성과 성숙도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 만한 수준일 것이다. 이처럼 배우자 기도가 청년들의 연애 스킬 중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배우자 기도의 가장 큰 폐해는 개인의 미성숙함에 따른 결과의 책임이 하나님께 전가되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애인이 잘못한 걸 두고 “기독교인, 정말 진절머리 나!”라고 한다.

크리스천은 자아를 하나님께 양도한 자들이다. 배우자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의 주인공 역시 예수 그리스도다. 모든 기도의 최종 귀결은 그분의 영광이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수 있다. 예수님도 문을 두드리라 하셨으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건 ‘자신만을 위한 문을 두드리던’ 내가 어느덧 ‘하나님나라와 의를 위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두드리는 문이 달라진다. 내 소원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물론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만큼 기도가 절실하다.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 기질과 취향이 투영된 바람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배우자 기도의 결론은 오직 주님께 ‘순종’이어야 한다. 내 자아의 욕구와 취향, 기질을 깎고 깎아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겸허히 순종하는 것이다.

혹여 타성에 젖은 강퍅한 마음 탓에 하나님의 선물을 못 알아보거나 하나님의 섭리보다 내 취향과 기질을 우선으로 삼는 ‘하나님과의 불건전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난 성품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배우자 기도는 하나님께서 날 위해 예비해두신 배우자를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영성의 센서를 거룩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배우자 기도의 본질은 ‘자기 부인’이다. 내 소원이 아닌 예수님의 소원을 이뤄달라는 기도이자 자신이 예수님의 소원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만한 영성을 소유하길 바라는 간절한 문 두드림이다. 결혼하는 이유와 목적도 마찬가지다. 오직 주께서 영광 받으시길 바라는 내 자아의 완전한 양도(讓渡)가 크리스천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의 《결혼 신학》의 핵심은 첫째, 결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둘째, 결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배우자 기도’보다 ‘예수님 기도’에 힘쓰자. 결혼은 자기만족적 행복보다 하나님나라와 의가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게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충실한 매개가 된다면 그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황홀하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우리들의 원츠(wants)와 니즈(needs)를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원츠와 니즈를 위해 기도하자. 애인과 아내(남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러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감사와 화평 가득한 결혼생활을 누릴 것이다.

– 책읽는사자의 신앙의 참견, 책읽는사자

†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2장 18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시편 145장 18절

† 기도
주님께서 예비해두신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나의 욕구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배우자를 알아볼 수 있도록 당신의 영성의 센서를 거룩하게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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