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은 직장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음주문화를 말하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밀레니얼 세대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 짓는 개개인성이 점점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아 많은 기업이 음주문화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라고 한다.

회식 자리에서의 갖가지 문제(성희롱 및 사생활 침해 등)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법적 문제로 비화되는 걸 막고자 회식을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회사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퇴근 후 모임을 갖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따로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 극도의 언컨택트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기업 문화뿐 아니라 우리 생활문화가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한다. 회사에서 사원에게 ‘억지로’ 술을 강요하는 건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일이 되고 있으며 계약서에 명시된 근로 시간 이후에 기업이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을 지양하는 게 기업 문화가 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는 직원이 50명 이상인 사업장일 경우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근로계약법으로 보장하여 기업이 근로자에게 근무 시간 외에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보내는 걸 법적으로 금한다. 한국과 단일 비교는 적절치 않으나 2030 밀레니얼 세대가 이와 같은 개념을 보편적 상식으로 여기고 있기에 실제 기업들이 이에 맞게 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다는 것이 주요 시사점이다.

하물며 요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건강을 위해 금주를 한다. 금연은 기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크리스천이 아직도 ‘기독교인은 술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논쟁하는 건 창피한 일이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걷는다는 자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자기계발러’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의 직장생활을 말할 때, 우선 자신이 진정 ‘크리스천답게’ 살 용의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죄를 끊을 용의가 없는 사람’과 ‘비록 내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어떻게든 복음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에 속한 사람은 죄를 이길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든 죄를 사랑할 방법에 골몰한다. 성경에 술 마시는 게 죄라는 구절이 없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다, 한국은 술에 너무 보수적이다 등 온갖 핑곗거리를 찾아낸다. 하지만 그 시간에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 및 가정 폭력과 음주의 상관관계를 공부해보라. 아니면 무리한 종교적 해석을 들이대기보다 “그냥 술을 마시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그나마 정직한 반응이라고 본다.

혹자는 안 믿는 자를 전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그들이 교회에 갖는 불편한 거부감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논법이라면 ‘전도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 술을 팔아야 하는가. 그럼 성도착증 환자를 전도하려면 ‘그들을 위해’ 교회가 각종 음란물과 매춘부를 들여야 하는 걸까.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 유럽에서 교회를 담임하신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술을 판매하고 바를 운영했던 어느 교회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연히 그 교회는 얼마 못 가 망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누가 그런 교회를 다니겠는가. 또 진정한 술꾼이라면 누가 교회 오르간 소리를 듣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싶겠는가. 발상부터 인본주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천 음주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주장하는(더 나아가 스킨십 문제 등 자유방임적 변질된 복음을 주장하는) 이들의 본질은 ‘예수님보다 죄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크리스천 직장인의 금주를 논할 때 먼저 ‘크리스천답게’ 살 용의가 있는지부터 분별하는 게 현명하다. 술을 마셔도 된다, 안 된다의 논쟁에 헛된 시간을 뺏기지 말라는 말이다. 애초에 거룩과 경건을 위해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그런 것에 자기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지침’에 더욱 골몰한다.

한번은 내가 신앙 멘토링을 해서 나름 괜찮은 곳에 취업한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첫 회식이 있는 날이라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을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믿음을 고수해. 혹 네가 술을 끝까지 거부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말고 차라리 잘려라. 그게 하나님의 면접에서 합격하는 거야. 비록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음 직장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러니 당당하게 네 믿음을 지켜라.”

물론 노동법상 회식에서 술을 거부했다는 사유로 해고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사내에서 이런저런 다른 방식으로 피해를 볼 가망이 크다.

내가 왜 저렇게까지 말했을까. 처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건 평상시가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진짜 내 믿음의 수준을 알고 싶다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반응과 선택을 보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입사원의 사내 첫 회식 참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떻게 회사생활 할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물론 넌크리스천은 회식에 이런 진중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도 크리스천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첫 사내 회식이 자신의 믿음을 테스트 받는 첫 관문인 만큼 진지한 의미가 담겨있다. 하여 당연히 커다란 심적 부담이 따른다.

나와 그 친구를 포함하여 함께 동역하던 친구들은 그날 내내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기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가 믿음을 견지할 수 있도록 상황을 몰아가셨다. 나중에 들어 보니 사장이 술을 권했는데 자신은 술을 안 마신다고 하니 사장이 알겠다며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옆 사람이 “우리 엄마도 권사야”라며 압박했으나 끝까지 술을 거부하는 그의 선택을 인정하며 넘어가는 분위기로 흘러갔다고 했다. 단호하지만 정중하게, 진지하고도 분명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와 비언어적 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뉘앙스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몇 차례 회식이 있었으나 술을 먹지 않는다고 분명히 의사표시를 하자 “그 친구는 절대 술을 안 마셔”라는 입소문이 나서 혹여 누가 술잔을 권하면 주위 사람들이 먼저 알려주고 말린다고 한다. 내 아내의 이야기다.

-책읽는사자의 신앙의 참견

†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 2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고린도전서 15장 58절

† 기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가 우선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녀되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늘 기도하며 분별의 지혜를 구하는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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