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나님은 선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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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는 생각했습니다(아담도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저 신 아래 있는 나는 얼마나 불쌍한가.’ 자기 연민은 결국 불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즉 하와 안에 있는 자기 연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했습니다!

많은 신자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고통을 맞이할 때 같은 심리적 기저를 가집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나에게 주시지? 내가 주일성수도 잘하고, 헌금도 제때 냈고, 봉사와 헌신도 했는데 왜 이러 한 고통을 주시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봤자 소용없어. 그는 나를 착취하는 신일 뿐이야!’ 뱀의 작전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기 작전!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자기 연민에 빠지며, 결국 불순종을 정당화하는데 이릅니다.

치료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은 얼마든지 자기를 연민하실 수 있었습니다. 율법에서 말한 바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그분 역시 모르실리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순종을 할 뿐이지만, 그분은 진정하고 완벽한 순종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주 불순종하지만, 그분은 한 번도 불순종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셨습니까? 결국 십자가의 저주 아래 놓이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자기 연민의 지옥에 빠지실 법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분은 성부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을 향해서, 결국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라고 신뢰를 표현하며 죽으셨습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저를 버리신 것을 아나이다. 저는 이제 무덤에 갇히고, 3일 동안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지옥에 있겠지요. 하지만 저를 다시 살리실 아버지를 믿습니다. 지금은 비록 당신의 버림을 받지만, 제 죽음과 부활을 사용하셔서 제게 신부를 주실 아버지를, 그 선하신 당 신을 믿나이다. 나의 영혼을 자기 연민에 던지지 않겠나이다. 나의 영혼을 오히려 당신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으셨던 분이, 이렇게 담대하게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연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자기연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담대히 그분의 선하심을 믿으십시오.

담대히 그분 앞에 나아가 말씀하십시오.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보며 제가 바보 같았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우심과 선하심을 의지하겠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굳건히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제게 행복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말씀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을 보라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다시 교회로 모이는 시기,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잘 생각해 봅시다. 만일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다면, 우리 마음에 계신 하나님은 너무 작은 분이셨을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시 50:21)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껏 우리와 비슷하거나 좀 더 커다란 크기의 지혜와 선을 가지신 존재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보다 너무 작습니다.

존 파이퍼는 성경을 ‘망원경’에 비유합니다.

망원경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아주아주 크지만(정말 너무 커서 지구보다도 더 크지만) 너무 멀리 있어 우리 눈에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별을 더 가깝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멀리 계셔서 우리 눈에 작게 보이는 하나님을 훨씬 더 크게 보이게 해줍니다.

물론 성경마저도 하나님의 실제 크기를 다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을수록, 이해할수록, 더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이 훨씬 더 압도적으로 크신 분으로, 지혜롭고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반면에 TV나 세속문화에 빠지는 것은 일종의 ‘현미경’과 같습니다.

TV는(그리고 유튜브는, 넷플릭스는, 기타 등등은) 실제로는 우리를 그다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크게 보이게 합니다.

TV 홈쇼핑을 볼 때 우리는 저 옷을 사지 않고서는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배달 받아 입어보면 별것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멀리하고 세속을 더 가까이할수록, 우리의 하나님은 작아지실 것입니다.

이 말은 오직 교회와 관련된 활동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작으면 작을수록, 세상의 많은 것이 신이 되어 우리 자신을 지배할 것입니다.

고통은 자주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만약 원망하고 있었다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다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다시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드십시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그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란하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위 내용은 도서 회복하는 교회 – 우리가 다시 모일 때,   50~56 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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