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말 한마디… 불편했던 마음이 오히려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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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없을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 이해가 되는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세계가 있다는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지금 나의 이해의 넓이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추측하여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앞에서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 그 마음을 올려드리고 그 상황을 위해 기도 할때 주님이 개입할 자리를 남겨놓을 때 주님이 일하시는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지하철에서 어린아이 3남매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진흙발로 온 객차 안을 더럽히며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사람들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제일 큰 애가 6,7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철부지 아이들보다 그런 아이들을 무책임하게 놔두며 방관하는 그들의 젊은 아빠에게 더 화가 났다.

결국 참다못한 승객 한 사람이 그 아빠에게 화를 냈다.
당신 자식만 귀하냐고, 당신 애들 때문에 지금 다른 사람을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거 안 보이냐고. 어째 젊은 사람이 이렇게 무책임하냐고. 그러자 그 아빠 되는 젊은 남자가 화들짝 놀라더니 “아, 죄송합니다!” 하고 연신 허리를 굽혀서 사과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류의 몰상식한 사람이라면 으레 적반하장으로 “당신이 뭐 보태줬어?” 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칠 텐데 깜짝 놀라서 미안해하니 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다.
그런데 젊은 아빠가 사과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실은 그 철부지 3남매의 엄마가 이 생때같은 자식들을 두고 얼마 전에 죽어서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의 묘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신발은 온통 흙투성이였고, 이 남자는 이제 아내 없이 엄마 없이 이 어린 자녀들을 키울 걱정과 허망함에 넋이 나가서 아이들이 소란 피우는 것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진흙발로 객실 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여전한데, 한 가지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이해를 한 것이다.
그래서 상황은 똑같은데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달리 대하기 시작했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어떤 사람은 눈물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축복해주었다.

우리는 화내고 갈등하고 분열하는 이유를 상황의 문제나 몰상식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이해의 유무일 수 있다. 상황이 그대로여도 이해하면 용납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대뜸 먼저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저 사람에게(저 상황에) 뭔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라고 성숙하게 그 공간을 남겨두고 조금 기다려주면 좋겠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열매가 편견이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겸손이다.
<풀림>안호성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