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과 인생을 실패로, 좌절로, 멸망으로 이끄는 몇 가지 함정들이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것이다. ‘하나님 필요 없어. 운명아, 저리 비켜. 내가 간다.’ 이런 사람들이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 미숙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천재였고,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다 보니까 도를 지나쳤다. 교만해졌다. 자신한테는 불가능이 없는 것처럼 생각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근사한 말을 남겼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미숙한 아이는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못한다는 것을 모른다. 슈퍼맨, 마징가Z 같은 만화 영화 보고 목에다 보자기 묶고 날아다니는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보자기만 묶으면 나는 줄로 생각한다. 미숙해서 그렇다. 나폴레옹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미숙함이다. 이게 우리를 실패로 이끄는 첫 번째 원인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둘째 함정은 세상의 꾀, 요령, 악인의 꾀를 좇는 것이다. 악인의 꾀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만 하면 성공할 것 같다. 하지만 시편에서 하나님이 가르쳐주시지 않았는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복 없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표현이 근사하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 1:3,4).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지만, 복 없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겨는 모양은 제대로 갖췄지만, 알맹이가 없다. 그래서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린다. 모양새는 그럴듯해 보이나 실속이 없다. 악인의 꾀를 쫓아 살게 되면 우리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좇아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셋째로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큰 물주’이다. 살다 보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만한 사람들이 보인다. 권력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그 끈을 잘 붙잡으면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그를 따라다니는 경우가 참 많다.

후배 목사 중 한 명이 유학 가서 박사학위 과정도 다 마치고 돌아왔는데, 학교에 자리도 없고 마땅한 임지도 없어서 한 1년 동안 굉장히 낙심했었다. 선배라고 날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이런 말을 툭 던졌다. “끈 떨어진 연 같아요. 제 마음이.”

사랑하는 후배라서 직언을 해줬다. “네가 끊어졌다는 끈은 끈 아니야. 그건 끊어진 게 아니라 본래 끈이 아니었어. 끈은 하나밖에 없어. 그 끈을 붙잡아야 살아. 그 끈은 보이지 않지만, 붙잡으면 끊어지지 않지.”

내가 얘기했던 끈은 하나님이었다. 우리는 하나님만 끈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썩은 동아줄인데 하나님보다 더 든든해 보인다고 그걸 끈으로 여기는 경우가 참 많다. 사람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면 실패하고 멸망하게 된다.

마지막 넷째로 ‘모세 신드롬’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드롬’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세처럼 ‘나는 못해요, 나는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하는 것이다. 나폴레옹과 정반대이다. 나폴레옹은 ‘나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난 그냥 양치기예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전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이 네 가지 함정에 빠지게 되면 우리 인생은 승리할 길이 없다. 성공할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꼭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전제가 없었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가 무엇인가?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을 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모세의 마음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 붙들리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고, 승리하고, 구원 얻는 삶의 유일한 길이고 지혜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바로에게 가서 할 말과 바로를 이겨낼 수 있는 길도 예비하지 않으시고 무작정 죽음의 길로 모세를 내모셨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셨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할 필요 없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그냥 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감당할 만한 힘과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 당시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는 살 확률이 거의 없는 시대였는데도, 하나님이 가라 하시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나지 않았는가. 아브라함에겐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무섭지만, 나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이 가라 하셨으면 그 가는 길을 지켜주시겠지.’ 이것이 믿음 아닌가.

바울이 유명한 말을 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 믿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애굽으로 가라 하셨으면 그냥 가면 된다. 당연히 무섭다. 자신도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소명이 분명하면 그냥 순종하면 된다. 그래서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는가?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안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계속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삶을 살아낼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또 공격해서 승리하는 삶을 쟁취해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날기새2, 김동호

†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이사야 40장 31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1장 9절

† 기도
하나님, 우리가 세상의 끈이 아닌, 세상의 큰 물주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오늘 하루도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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