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충성됨 – 한결같음’이다. 그래서 충성되게 사는 사람들은 영이 강해진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 곧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보이는 크로노스의 시공간만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비밀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비밀을 ‘맡은 자’다. 맡은 자란 ‘오이코노모스’로 “관리하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 ‘비밀’을 관리하는 자, 곧 비밀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할 수 있는 자, 그 비밀을 사용할 수 있는 자다. 우리는 하늘을 이 땅에 가져오는 ‘문’이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런데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충성이다. ‘충성’과 ‘믿음’은 헬라어 ‘피스티스’(?로 같은 단어다. 믿음이 카이로스의 시공간을 여는 열쇠라고 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충성과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한순간에 발휘되는 순간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는 ‘태도’이기도 하다. 충성된 태도로 하나님이 두신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지키는 것이 비밀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그 충성됨을 통해 비밀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충성됨을 통해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하늘의 문은 한 번의 큰 믿음으로 열리기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음의 자리를 충성되게 지키는 그 태도를 통해 열린다.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충성되게,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충성되게, 매일 한결같이 마음과 자리를 지키는 충성됨이 필요하다.

이 충성됨의 때가 찼을 때 하늘이 열린다. 기억하라. 믿음은 한 번의 로또가 아니다. 믿음은 꾸준한 충성됨이다. 믿음은 태도다. 영적인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다.

반면 혼적이고 육적인 사람은 꾸준함이 없다. 한결같음이 없다. 시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혼적인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바람이 이리 불면 이리 날아가고, 바람이 저리 불면 저리 날아간다. 종잡을 수가 없다. 기회를 보기 때문에 그렇다. 인생 전부를 쏟아부을 것처럼 하다가도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시큰둥하다.

다른 곳에 뭐 없나 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한다. 그러다 뭔가 좋아 보이는 것을 발견하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줄 듯이 열정적으로 반응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 육적인 사람은 기회나 상황을 찾는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기회나 상황을 보지 않는다. 영적인 사람은 ‘관계’를 본다. 충성되다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영적인 사람은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셨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거기 머물고, 하나님이 “가라” 하셨으면 그냥 간다.

이것이 충성이며 영적인 것이다. 육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지만, 영은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당신이 얼마나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판가름해보려면, 얼마나 한결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보면 된다. 사람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면, 보이는 것이 없고 들리는 것이 없어도, 하늘이 닫힌 것처럼 느껴져도,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이것이 영적인 것이다.

내가 만난 가장 영적인 분 중에 한 분은 1977년에 남편과 세 딸과 함께 이집트 선교사로 들어가신, 중동 1호 대한민국 여자 선교사님이다. 공항에 마중 나올 사람도 없고, 집을 구하거나 정착을 도와줄 사람도 없던 그때, 선교사님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 들어가셨다. 단지 믿음이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그 후에 나타난다. 이집트 선교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자궁 외 임신으로 촌각을 다투는 큰 수술을 받기 위해 선교사님은 남편과 함께 한국에 나오셨다. 생각보다 큰 수술로 회복 기간이 길어지자 선교지를 오래 비울 수 없던 남편 선교사님은 아내와 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먼저 이집트로 돌아가셨다.

몸이 회복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외교부에서 편지가 왔으니 받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의 편지라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외교부를 찾아갔지만,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사망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이집트 교회의 말씀 집회를 섬기기 위해 가던 중 사막에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을 수습하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갔을 때, 선교사님을 기다린 것은 재회를 기뻐하는 남편의 환한 미소가 아니라 무덤과 비석뿐이었다. 이에 선교사님은 하염없이 울며 기도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마음속에서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

“네 남편은 이집트의 영혼과 중동의 영혼을 사랑했다.”

“주님, 저도 이집트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남편의 뒤를 이어 이집트에서 계속 사역해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 남편이 가진 언어의 능력이나 지혜는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다시 이집트로 가겠습니다!”

남편의 무덤 앞에서 다짐하였다.

“당신의 몫까지 내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랍에서 여성 혼자 산다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두셨는데, 남편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곳을 떠날 수 없다는 마음, 이 충성됨으로 한 해 두 해 홀로 이집트에 머무셨고, 그것이 어느덧 42년이 되었다!

충성, 이것이 진짜 믿음이며 이것이 영적인 것이다. 믿음은 충성된 태도다. 하나님께서 두신 곳에 한결같이 머무는 것이다. 믿음으로 발을 떼서 이집트에 처음 들어간 것도 믿음이었지만, 진짜 하늘을 여는 믿음은 42년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두신 그곳에 머문 그 충성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남편이 세상을 떠나도, 한결같이 하나님이 두신 곳에 머무는 태도. 이것이 진짜 하늘을 여는 믿음이다. 실제로 선교사님이 가신 곳에서 무수한 하늘의 문이 열렸다(《광야에 길을 내며》 김신숙, BookCT).

-카이로스 2 : 하나님의 타이밍, 고성준

† 말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디모데전서 1장 12절

† 기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음의 자리를 충성되게 지키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두신 곳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두신 곳에 머무셨습니까? 당신이 지금 머무는 곳이 하나님이 두신 곳입니까? 그렇다면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배와 생활을 은혜롭게 돕는 디지털 굿즈
성경필사 pdf 디지털스티커 성경인포그래픽 디지털굿즈 전체보기

▷2021년 새해 함께 하나님 말씀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