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신경쓴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사람들의 판단에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판단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육의 특징은 사람을 의식하는 반면, 영의 특징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다. 육은 보이는 세상을 인식하고 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육은 보이는 사람을 의식하기에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한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육으로 사는 인생은 그래서 피곤하다. 사람들의 판단을 다 신경쓰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사람들의 판단에는 일관된 기준이 없다. 이렇게 하면 이 사람이 뭐라 하고, 저렇게 하면 저 사람이 뭐라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까? 피곤하다.

더군다나 스스로에 대해 판단하고 자책하기 시작하면, 이건 더 피곤하다. 영은 사람의 판단을 신경쓰지 않는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어떤 사람의 판단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 4절 말씀 때문이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 어차피 사람의 판단으로 ‘의롭다 함’을 입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당신은 의인이요!”라고 해준다고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아무리 “그 길이 옳은 길이요!”라고 해도 그것이 옳은 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 4:4] …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만 나를 판단하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야 의로운 것이고, 하나님이 “옳다” 해야 옳은 것이지 사람이 의롭다, 옳다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보이는 세상에서는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 보이지 않는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인정해준 의로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 소용도 없다. 사람들의 정죄 역시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계신 그곳, 하나님의 의지가 펼쳐지는 카이로스의 시공간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어떤 고난을 겪든, 아니면 반대로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어떤 인정을 받든 그것은 그저 이 땅의 일일 뿐이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의 심판만이 역사한다. 그래서 육으로 사는 사람은 피곤하지만, 영으로 사는 사람은 피곤하지 않다. 한 분의 눈치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기준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특별히 목회자는 ‘육으로’ 목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 비위를 맞추려 하면 스트레스만 커질 뿐이다.

목회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 눈치만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 눈치만 봐!’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하실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사람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정리하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영적인 사람은 성급히 스스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주께서 모든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시고 정리하실 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아, 그거 아니고요”, “당신이 틀렸고요”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육적인 사람이 하는 일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 때, ‘어? 내가 틀렸나?’ 또는 ‘에이, 내가 옳은데!’ 이러지도 않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주께서 드러내고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에게는 ‘기다림의 영성’이 있다. 오래 참는 것은 영적인 것이다. 반면 서두르는 것은 육적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에 ‘인내’는 있어도 빨리 끝내는 것은 없다. ‘빨리빨리의 민족’인 한국 사람은 이런 영성을 갖기 위해 자아를 부인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혼의 역사다. 하나님께서 드러내고 나타내실 때까지 스스로에 대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카이로스2, 고성준

† 말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로마서 2장 1절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 야고보서 4장 11절

† 기도
주님,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저 스스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어떻게 하며 기쁘시게 해드릴지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스스로를 판단하거나 다른 이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집중하며 기다림의 영성이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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