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마라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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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누구나 마라의 현실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마라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그러한 현실이 마치 자신에게 영적인 문제가 있는 증거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성과 싸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유혹 앞에 무너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라의 현실을 겪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라는 식의 일차원적인 이해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더 크고 풍성한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문제잖아.’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우리가 겪는 마라의 현실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처럼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되는 이야기만 하고 싶어합니다. 교회 안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만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신의 깊은 마라의 현실을 꺼내려 하겠습니까? 결국 모두가 잘되는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듣기 좋은 이야기, 부러움을 살 만한 이야기만 나누려고 합니다. 교회가 이런 경향으로 가득해지면 어떻게 복음 안에서의 결속과 성령 안에서의 하나됨과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미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부끄러워하면서 숨겨야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다 자기 자랑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우리가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면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모임들과 구별될 수 있겠습니까? 허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 안에서 마라의 현실을 나눌 수 없다면, 자신의 약점, 자신의 문제, 자신의 실패, 자신의 마라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현재가 아닌 화려했던 과거의 경험들만을 나누고 왕년의 나오미처럼 즐겁고 유쾌했던 시절만을 이야기한다면, 거기에는 진정한 현실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버겁고 고통스러운 현실일지라도 그 위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소망을 두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현실에 철저하게 기반하고 그 현실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며, 이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마라 같은 나의 삶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린 다 약자로 만나고 패자로 만납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난 척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잘난 건 좀 숨겨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나오미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형제를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 나오미이고 룻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했던 것처럼 부름 받은 것이 교회입니다. 두 과부, 나오미와 룻이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어머니가 있는 곳에 내가 있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부관계가 행복한 관계가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 질문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것을 설명합니다. 복음은 마라 같은 현실을 넉넉히 이기게 합니다.
복음이 지금 당장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바꾸어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마라의 현실을 살아가는 법, 즉 답 없이 살아가는 법입니다. 그 안에서 우린 다 약자로 만나고 패자로 만납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난 척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잘난 건 좀 숨겨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나오미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형제를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 나오미이고 룻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했던 것처럼 부름 받은 것이 교회입니다. 두 과부, 나오미와 룻이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어머니가 있는 곳에 내가 있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부관계가 행복한 관계가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답 없이 살아가기>, 나오미와 룻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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