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 렙돈이 전부였던 과부’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보면서 제가 만나는 환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적은 자원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이는 환자의 삶 전체를 두 렙돈짜리 인생으로 여긴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정서 외적인 면에서는 아프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달란트를 가졌을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궁핍하고 고통스럽다는 의미지요.

물론 정서뿐 아니라 삶의 많은 영역에서 두 렙돈만 가진 사람도 있어요. 이때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닌 ‘절대적 절망’이 찾아옵니다. 자기 삶 자체가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주님께 ‘왜 모두에게 같은 환경을 허락지 않으셨나요?’라며 따지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주님은 그들의 두 렙돈짜리 삶을 초라하게 여기는 분이 아니에요. 그 삶이 드러나는 모습이 두 렙돈일 뿐이라도 그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칭찬하시지요. 그 초라한 모습이 그가 마음을 다한 결과물이라면 “착하고 충성되다”라고 하실 거예요.

드러나는 모습이 좋은 신앙인이든 아니든 그게 전부인지 아닌지 아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시며(마 10:30), 우리의 강함과 약함을 아시며,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면까지 속속들이 아시니까요.

그래서 어려움 중에 최선을 다해 회복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결코 ‘겨우 두 렙돈짜리 인생’이라 탓하지 않으실 거예요. 반면에 좋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도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반쯤 땅에 묻은 모습이라면 주님이 칭찬하실 리 없겠지요.

우울증이 있는 신앙인들은 가진 것 전부를 드렸으면서도 조금밖에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매여 살아요. 저는 과부의 두 렙돈처럼 자신이 가진 전부를 다해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환자들이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주님께 초라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 자신의 아픔을 내려놓고 위로받기를 바라요. 한 환자의 표현을 빌리면 ‘없는 정신력을 짜내서 버티는’ 스스로를 응원하면 좋겠어요.

이것은 내게 약함을 주신 주님을 원망하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멈추거나 부모나 환경, 상처 탓만 하며 주저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에요.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따질 수 없어요(롬 9:20). 하나님이 창조하신 내 모습을 충분히 인정하고 수용하며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자는 거지요.

 물론 주님이 충분한 힘과 능력을 주셨는데도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면 곤란하지요. 같은 자원을 허락하셨다면, 그 환경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다해야 해요. 사람의 눈에는 많이 드린 듯 보여도 실은 얼마 안 된다는 걸 주님은 아실 테니까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피조물로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걸로 충분히 칭찬받을 만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아주 공평하세요. 드러나는 모습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시지요. 나는 주님이 허락하신 삶에 어떻게 최선의 반응을 했는지, 내 삶의 주인이며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제껏 더 나은 모습으로 살지 못한 걸 한탄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이 모습 이상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대부분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더 잘 살 수는 없을 거라고 답해요.

자, 이제 당신의 삶을 떠올려보세요.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부모님 밑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똑같은 얼굴과 키, 재능, 기질로 다시 태어나 좋았던 일, 어려웠던 일들을 그대로 겪어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모든 순간을 다시 한번 사는 거지요.

저는 ‘엄청 더 잘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모습’인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어요. 주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을 꾸짖듯 그들을 꾸짖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다시 산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없을 것 같다”, “부족한 내 모습이나마 최선을 다해 살았다”라고 답한다면 저는 되묻고 싶어요.

지금까지 당신의 삶의 결과인 이 모습이 두 렙돈짜리든 한 달란트짜리든 주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아마도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아, 애썼다’라고 해주시지 않을까요? 주님은 긍휼하시며 자비가 많으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죄인인 우리를 자녀 삼아주실 만큼 은혜가 많은 분이세요.

우리의 초라한 하루가 사람의 눈에는 겨우 1천 원짜리 신앙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멋진 하루가 아니라 그저 버틴 하루일지라도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처럼 귀히 받아주실 거예요.

지금은 엉망진창이고 자신조차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더라도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 구하기를 멈추지 마세요. 오늘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도 귀히 여겨주실 그분을 기대하며 포기하지 말고 작은 걸음을 내딛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내 딸, 애썼다, 한혜성

†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4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사야 41장 10절

†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저를 향해 주님께서 ‘그래, 애썼다!’ 말씀하시며 등 두들겨 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납니다. 내가 하는 작은 일도 귀히 여겨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최선의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주님 이런 저를 안아주시고 힘주세요.

적용과 결단
당신은 오늘도 주님이 허락하신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최고가 아닌 최선,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작은 일에도 귀히 여겨주실 그분을 기억하며 오늘도 힘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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