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우리의 몫은 무엇일까요?

제게 상실의 고통 자체는 말할 수 없이 악했으나 그 상실의 끝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 그리고 내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지요. 인간으로서 철저히 무력한 상황 속에서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이를 받아들이는 게 제 몫이었지요.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이 과정을 거쳐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걸 가지고 싸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전념하며 살 수 있거든요.

체념하고 멈추는 것과 기꺼이 수용과 전념을 하는 것, 즉 삶의 고통을 수용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몫을 다하는 건, 그 시작은 한 끗 차이일지 모르나 방향성이 매우 달라서 삶이 지속될수록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저는 자타공인 정말 애쓰면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애쓴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하나님만을 의지한다고 했으나 사실 제가 애쓰고 열심히 살며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랐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예요.

둘째를 임신해서도 그랬습니다. 직장에서 힘든 내색 없이 최대한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라 여겼지요. 또 늦은 퇴근을 해서는 종일 엄마를 기다린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에 짧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신나게 놀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는데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부터 능력이 안 되면 노력으로 따라갔습니다. 밥 먹으러 나올 시간도 아까워 도서관에 두 끼 먹을 김밥이나 빵을 사 가곤 했지요. 그렇게 애쓰면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의사가 되고 원하던 정신과를 전공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이를 잃은 것이지요.

열심히 살아도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철저히 받아들이게 된 삶의 고통 앞에서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하나님이 내 인생의 조력자가 아닌 주인이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이것은 제가 잃은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쓴 부분까지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제 몫을 오롯이 인정하며 애통해했지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제 삶의 다른 문제들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었고, 상실 전보다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해졌어요.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니고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고 아픈 기억이지만 그 고통이 제게 안겨준 성장도 분명히 있었어요. 여전히 저는 편안하게 자족하며 지내는 것보다 가능한 한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장점이기도 하기에 그런 제 모습을 다 버리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값없이 주어지는 축복과 은혜를 누리듯 이해되지 않는 고통도 경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인간으로서 제 몫에 최선을 다하려고 할 뿐입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아내와 딸을 잃고 《하나님 앞에서 울다》를 쓴 제럴드 싯처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소망임을 말합니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슬픔을 마주하기로 선택한 반면, 그러면서도 계속 일을 하고 특별히 내 아이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기로 선택했다. 난 일상의 삶이 내게 요구하는 책임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상실로부터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고통을 내 삶 속에 체화시킴으로써 그 고통이라는 주사를 덜 아프게 맞고 싶었다. 지혜를 배우고 싶었고, 성품상으로도 보다 성숙해지고 싶었다.

상실을 통한 충분한 파괴를 경험하면서도, 나는 내가 경험한 상실의 해악성을 확대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적절하게 비극에 반응하고 싶었다. 나는 어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한 나의 영혼이 성장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온전히 흡수할 줄도 알고, 죽을 줄도 다시 살 줄도 알며, 포기라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을 줄 아는 그런 잠재력 말이다. 어둠에 맞서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일출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셈이었다.

_위 책, 56,57쪽

그는 “어둠에 맞선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저는 그가 어둠에서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이해했어요. 저는 제가 만나는 개인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존재가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를,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전념하는 선택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내 딸, 애썼다, 한혜성

† 말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시편 119편 71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 이사야 49장 13절

† 기도
하나님.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내가 애썼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내 인생의 온전한 주인은 제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내어놓고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우리는 고통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삶의 문제를 온전히 수용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삶을 받아들이고 전념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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