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쉽게 돈을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많이 받은 자가 지는 짐의 무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많이 받았으니 인생을 쉽게 살고 쉽게 남겼을까? 많이 받을수록 단순하지가 않다. 문제가 더 복잡할 수도 있고, 그들이 세우는 계획에 따라 더 큰 좌절이 올 수도 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에 낙망하여 주저앉아 세상이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한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계획이 최선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것이다. 한 치 앞도 분별할 수 없는 사람이 세운 계획이 가장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시야의 폭이 너무 짧아 보이는 것 외에는 볼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 그러다 문득 ‘이 달란트는 주인의 것이다. 주인이라면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계획을 철수하고 다시 원점에 선다. 그리고 주인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 잠 19:21

그는 자신의 안락을 위한 계획에서 주인을 위해 남기는 계획으로 삶의 궤도를 수정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들이 지저스 스푼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달란트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주신 자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위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 남기는 자로 살아야 함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남겨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우리는 그저 본전도 못하는 삶을 살도록 이 땅에 보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남길 수 있는 자원을 주시고, 그것을 재량껏 쓸 시간을 주셨다. 그것은 남길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주신 것이다. 장사할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린다. 두드리지 않으면 가능성을 열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는 ‘No’도 경험하고 ‘Yes’도 경험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재능을 확인한다. 확인된 재능으로 목표를 정하고 수고의 폭을 넓힌다. 장사하는 요령, 즉 삶을 사는 지혜를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남기는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체득해간다. 그는 이제 하나님과 이웃에게 유익한 삶을 계획하며 살아간다.

남기는 삶이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임에 오히려 생명력을 느낀다. 수고와 고난이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들은 수고와 고난과 동행하며 남기는 기쁨을 알아간다. 그들은 큰 것을 꿈꾸지 않는다. 작은 일에 충성한다.

작은 일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큰 일로 보시고 어떤 일을 작은 일로 보실지 알 수 없다.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삶이 남기는 삶이다. 그들은 날마다의 삶에 충실하며 주인과 결산할 날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삶의 끝에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어진 것을 땅에 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주인이 돌아왔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반기며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하고 남긴 달란트까지 주인에게 내어놓았다.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며 만족해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남긴 두 달란트를 더해서 주인에게 드렸고, 주인은 똑같이 칭찬했다. 만약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원금과 남긴 한 달란트를 드렸다면 주인은 어떻게 했을까? 똑같이 칭찬하지 않았을까?

주인은 종들에게 받은 만큼 남기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인이 엄하고 인색하다고 생각한 종이 문제다. 우리에게 작은 일이란 없다. 그 작은 일이란 당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가능성을 가진 일이다.

어린 시절에 읽어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외국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배경은 어느 성당, 그 성당에는 예수님상이 있었는데 한 어릿광대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상을 바라보며 마음의 쉼을 얻곤 했단다.

간혹 사제들이 예수님상 앞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읽거나 아름다운 찬송을 하는 것을 본 어릿광대는 자신도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접시 돌리는 재주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시간에, 어릿광대는 예수님상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뒤로 앞으로 접시를 돌렸다. 지나가던 사제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런 불경스러운 짓을 거룩한 곳에서 하다니.’

사제들이 그를 끌어내려 할 때 예수님이 단에서 내려와 그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주셨다는 동화 같은 단편 소설이었다.

우리의 접시돌리기는 무엇일까? 정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한 달란트까지 빼앗겼다. 빼앗긴 한 달란트는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졌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소유하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사용해서 더 풍족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인은 어떤 보상을 했을까? 주인은 이들에게 더 많은 일을 맡겼다. 세상 이치도 그렇지 않은가? 오너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더 크고 중요한 일들을 맡기지 않는가?

일의 축복,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찾아내 성실히 남긴 사람들은 더 큰 가능성을 복으로 받는다. 그것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저스 스푼, 오인숙

 

†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 6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시편 37편 23, 24절

†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주님 주신 것을 감사하며 남기는 충성된 일꾼으로요. 그래서 결산하는 그날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세상이 보기에 작은 일, 큰 일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는 큰 일, 작은 일이 없습니다. 모두가 소중하고 감사한 것뿐이지요. 그러기에 오늘 하루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맡겨주신 가능성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거두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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