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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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외동도 많지만 다둥이 가정안에서 의도치 않게 아이를 비교하고 차별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는 비교하고 상처주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이 그 보혈의 피로 구원하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부모와 다른 모습일지라도 그 자녀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주님께 올려드리길 기도합니다.
부모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교의식은 살의까지 품게 한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요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은 늘 그녀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주었다.
“당신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이 이렇게 대답했다.
“백설공주님이 제일 예쁘십니다.”

이 말은 왕비의 비교의식을 건드렸다.
쯧쯧, 너무 정직한 거울 같으니라구. 그러나 사실 거울의 특성은 정직 아닌가?

자신을 비춘 거울을 깨버리고 싶다면 당신의 방을 한 번 돌아보라.
아름답거나 멋진 스타의 사진이 붙어 있지는 않은가? 그 스타와 당신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
비교는 정직을 탓한다. 비교는 독사과같이 무서운 독성을 갖고 있다.

사위가 된 다윗을 볼 때마다 사울의 귀에도 정직한 거울 같은 여인들의 말이 윙윙거렸을 것이다.
“다윗이 당신보다 더 멋있고 훌륭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수금으로 자신의 울화를 다스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드디어 그의 광기는 다윗을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사울의 비교의식 때문에 다윗은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다윗은 죽을 고생을 하며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사울은 그런 다윗을 쫓아다니느라 삶의 시간과 자신까지 낭비하고 있었다. 딱한 사울 같으니.

비교의식을 가진 사람이 어떤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은 비교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사울은 허공을 치는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 덤비는 사람에게도 반감을 갖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을 비교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다.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그 기회들을 놓아버렸다.
그는 사람을 보지 않고 늘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고 살았다.
키 재기나 힘겨루기를 하자고 덤벼드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다. 지저스 스푼은 자신을 그 누구와의 비교 선상에도 세우지 않는다.
그가 가진 삶의 목표는 사람을 이기고 왕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 곁에는 비교에 무심한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차기 왕이 될 왕세자였던 요나단이야말로 자신의 왕관을 넘볼 수도 있는 다윗을 비교하고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왕자는 다윗을 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자기 생명을 사랑하듯 사랑했다(삼상 20:17).
그렇다고 요나단이 덜떨어진 사람은 아니었다.
오직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고(삼상 14:6), 홀로 적진에 들어가 적들을 흩어지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할 정도의 용맹과 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삼상 14:6-15).

요나단은 다윗과 견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 사울의 속을 썩였다. 얼마나 속이 썩었으면 자기 아들에게 단창을 던지기까지 했을까마는,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해 피신시켰다.
그가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다.
누가 왕관을 쓸 것인가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저스스푼>오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