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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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함께 말씀 읽는 시간을 행복해 하던 아이의 손에 핸드폰이 들리고 가족예배라도 할라치면 성경책 대신 핸드폰을 들고 나오는 모습에 예배는 시작도 전부터 잔소리와 짜증이 먼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다음세대를 부모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해도 주님앞에 실패가 아니라 끝까지 말씀 붙들고 나가길 원합니다.

첫째 아이가 돌 지난 즈음 우리 가족은 시댁에 갔다.
주일이 되어 어머님이 나가시는 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아이가 예배 때 잘 있지 못하고 그 시골 교회 안에서 예배에 방해가 되는 듯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와서는 상한 마음을 그대로 토하면서 왜 그러냐며 온갖 짜증을 냈고,
급기야 업혀 있는 아이를 한 대 쥐어박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일을 보내고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즈음에 나는 아이의 인성, 영성, 학습적인 부분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수첩에 나름의 계획이나 방향 같은 것을 적으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로서 앞으로 어떻게 잘 키울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는 내가 꿈꾸는 것과 반대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 주일 후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미나야, 세이를 많이 사랑해주어라.”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한마디 하신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되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고 알려주시는 듯했다.
그것은 바로 내게 맡겨주신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단 한 문장의 이 말씀이 계속해서 생각되었고 묵상할수록 눈물이 났다.
그렇다. 뭔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사랑이 먼저이다.
그날 이후 나의 기도 제목은 세이를 많이 사랑해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금요철야예배 때, 난 하염없이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아버지, 전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세이가 두 돌이 될 즈음, 정말로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는 무지와 씨름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육아서적이 있고, 주변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많이 보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경험했던 바보 같은 나의 모습 때문에 갈수록 육아에 자신이 없었다.

그 예배 때, 이런 감정들이 이제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나는 다짜고짜 어떻게 키워야 하냐고 눈물로 부르짖으며 질문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안 가르쳐주시면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잘 아시잖아요. 정말 앞으로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한참을 나의 무지함과 나의 무능력함을 토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내 딸아, 말씀으로 키워다오.”
그러면서 그 당시에 정확히는 몰랐지만 대충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던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주셨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네, 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전 정말 세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된다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것밖에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것만이면 됩니다. 진짜로요.”

“말씀으로 키워다오”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가벼웠다. 말씀으로 키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당장에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고 가르쳐주셨다는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말씀으로 키워다오”라는 주님의 음성만 듣고 어떻게 말씀으로 키워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하나님은 말씀 암송으로 첫째 세이부터 여섯째 제이까지 키우게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의지가 약한 엄마였고, 쉽게 포기도 잘하는 못난 엄마였다. 죄 중에 있는 내 모습에 낙심해서 ‘나 같은 엄마가 무슨 암송을 시킨다고…’ 하면서 암송을 중단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이만큼 했으면 할 법도 한데 암송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미성숙한 엄마의 모습도 있었다.

그런 내가 수없이 넘어지고 중단하고 하면서도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말씀으로 키워다오”라고 끊임없이 부탁하시는 주님의 음성 때문이었다.
<바보엄마>권미나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