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그래도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도 합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의 사랑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사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부모님 사랑을 잘 몰라요.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보니 이제야 좀 알 것 같지요.

저도 정말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었을 때 이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엄마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나를 내팽개쳤다고 생각했고, 남들에게 어머니를 계모라고 소개할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보니 누구의 사랑을 알겠느냐 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진짜로 받고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분명히 있는데도 청소년 반항기에 우리가 그 사랑을 못 느끼고 엄마 아빠에게 떼쓰지요. 저도 그때 저희 어머니가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 ‘이놈의 자슥아! 안됐다’ 하는 그 표정이 저를 경멸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눈빛인 줄 알았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모질고 독하게 당신의 모든 것을 절제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고 저를 키우셔야 했는지, 그래서 보인 어머니의 강직함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느낍니다.

여러분, 이렇듯 우리 자신이 그 포지션에 가보면 우리도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자녀가 애를 먹여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녀가 성장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에 대한 사랑을 금세 회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의 사랑을 잘 모르느냐 하면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데,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할 만큼 그 은혜를 느껴야 되는데,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몇 없어요. 못 느낍니다.

왜 못 느끼는지 아십니까? 뭔가를 느낀다는 것은 그것과 같은 수준이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제 키가 170센티미터인데, 제 키를 재려고 하면 적어도 170센티미터 이상인 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150센티짜리 자밖에 없다면 제 키를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몸무게를 잴 때도 100킬로까지 올라가는 체중계가 있다면 100킬로 이하는 몸무게를 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엄청나고 큰 사랑을 잴 수 있는 자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잴 수 있는 자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진짜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오 주님!” 이러면서 눈물을 줄줄 흘릴 텐데, “예수” 그 이름만 불러도 감격이 되어 찌릿찌릿 파르르 전율이 일어날 텐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제가 이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것은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저희 집 안방 타일에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얼굴이었어요. 가시관을 써서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예수를 보면 저는 기분이 썩 좋지 않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 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학교 때 할머니에 이끌리어 참석한 어느 부흥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분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때 저는 속으로 ‘아이고 하나님,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나님을 원망했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이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얼마나 아팠으면 하나님께 이렇게 나를 버리시느냐고 한탄했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 음성은 ‘하나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인 나를 버리면서까지 이 인간들, 이 원수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너무 크십니다’라는 의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때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이 믿어지면서 3개월 동안 저는 눈물을 흘리며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도 눈물이 나오고 길을 가다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게 보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과 은혜 때문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살려내심, 윤치영

†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6절

† 기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늘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코로나19로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자분들을 응원해주세요!!


▷예배와 생활을 은혜롭게 돕는 디지털 굿즈
성경필사 pdf 디지털스티커 성경인포그래픽 디지털굿즈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