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 중에 의외로 교회와 관련된 상처가 많고, 그로 인해 판단의 영에 붙들리는 경우도 많음을 보았다.

2004년 여름, 몽골에 온 한국 단기선교팀 중에 나를 기도와 물질로 섬기고 후원하는 한 권사님이 있었다. 당시 허리가 안 좋았는데, 내게 기도를 받으면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무리해서 단기선교를 왔다고 했다.

권사님과 허리를 놓고 기도하는데 앞이 캄캄하고 빛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다시 따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의 말씀을 권사님에게 주셨다.

알고 보니 권사님이 출석하는 교회의 당회가 목회자를 내보내려는 문제로 분열이 되었고, 그 와중에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어 몽골 단기선교팀 후원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겼다. 그러면서 권사님이 담당 장로님들과 많은 논쟁을 했고, 그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판단이 권사님 마음에 가득했다. 나는 권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권사님 안에 있는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장로님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사님을 위해서입니다. 판단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는 영혼들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질병도 낫지 않을 것입니다.”

권사님이 많이 울었다.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니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는 않고, 내려놓기 싫은 마음과 싸우는 과정이 기도 가운데 계속되었다. 권사님과 기도하면서 판단하는 마음의 뿌리가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았다.

그 후에도 단기선교팀 지체 중에서 몇 명의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아픔의 뿌리에 같은 교우에게서 받은 상처와 판단과 원망의 마음이 있었다. 판단하는 마음이 있으면 영적으로 순결할 수도, 건강할 수도 없다.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도 판단하려 든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묻곤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하나님은 과연 선한 분이신가?’

하나님이 옳은 분인지 그른 분인지, 신뢰할 만한 분인지 아닌지를 우리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순종했다. 당시 사람을 죽여 제사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방 종교의 풍속이었다. 인신 제사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계시가 왔을 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그분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했다.

우리는 때로 자신도 판단하며. 괴로워한다. 나를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를 판단하는 마음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판단하는 마음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든다. 이 부분은 신앙의 열심이 앞선다고 여겨지는 선교사도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경쟁심’이다.

한번은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이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며 통역과 찬양 인도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이레교회에서 파견해주었다. 그 목사님이 매우 고마워하면서 이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교단에서 교회를 맡은 선교사에게 아무리 부탁해도 통역자를 보내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칫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사역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힘들어할 수 있다. 이는 각자를 하나님께서 최적의 상황에서 훈련시키시며, 또 그분이 우리의 처지에 깊은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발생한다.

내가 믿는 영적인 진리 중 하나는 연합을 통해서만 부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나도 잠시 목회자로 파송 받고 안정된 후원을 확보하고 온 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깨달음이 있었다.

‘네게 안정이 더 필요하니, 아니면 내가 더 필요하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커서 그 어떤 걸로도 바꿀 수 없음을 확인했을 때, 그 부러움이 내 안에서 사라졌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겪는 또 다른 갈등이 있다. 바로 지위와 신분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힘들어하는 일이다. 한 예로 교수로 사역하기 위해 온 어느 목사님을 ‘형제님’이라고 불렀다고 노여워하거나 어느 목사님이 평신도 선교사를 ‘집사님’으로 불렀다가 신분을 구별하여 상하관계를 만들려 한다며 선교사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내 존재가 상대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에 있다. 이것이 서로를 판단하며 상처 받게 한다. 내 존재는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 있음을 깊이 묵상함으로써만 우리는 서로 찌르기 쉬운 판단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떤 선교지에서는 기존 선교사들이 새로운 선교사가 들어올 때 경계한다. 혹여 자신의 사역 영역이 줄 걸 걱정한다. 반면, 후임 사역자가 잘되도록 최선을 다해 섬겨주는 사역지나 사역 단체에는 언제나 연합이 일어나고 사역의 열매가 맺히는 걸 본다.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더 잘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를 높여주면 사단이 우리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침투하려는 통로를 막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더 성장하고 당신의 사역이 내 사역보다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사역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서로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놀라운 사역의 길을 열어가시리라 믿는다.

[리커버 에디션] 내려놓음, 이용규

† 말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 마태복음 7장 2~4절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로마서 2장 1절

† 기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안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세요. 판단하는 마음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기도하며 평안함을 누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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