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참 거룩하게 보였어요. 목사님은 항상 넥타이 차림이었고, 양 허벅지를 모으고 깍듯이 인사하시고, 어린 저에게조차 말을 낮추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교회에 와서 나쁜 짓을 해도 항상 웃으며 대해주시고, 한밤중에 술 먹은 사람들이 교육관 1층에 변 실수를 하고 토해놓아도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치우곤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목사님이 아주 대단한 강사나 유명한 목사님이 아니었지만 그 분의 삶이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로 ‘아, 교회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전도사 시절에 한국에서 오신 어느 초청 강사 목사님이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대부분 대학교수이고 다들 학력이 높은 특징이 있고 교회 사역에 8,90퍼센트를 선교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집회에 참석한 다른 목사님들이 다 주눅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손을 들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그럼 좌판 펴놓고 장사하시는 분이 그 교회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아마 그런 분은 오기 힘들 거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목사님 교회는 이상합니다”라고 하자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어떠하기 때문에 특수한 교회다”라고 하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몸을 구성하는 기관의 일부만 특수하게 발달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몸도 아니고 온전한 몸도 아닙니다. 성막은 문턱이 없습니다. 저는 교회 예배당도 성막과 같이 문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휠체어를 타고 가도 되고,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서 가도 됩니다. 누구든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다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미친 사람도 와도 됩니다. “목사님, 그래도 우리 교회는 좀 좋은 사람만 오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면 비성경적입니다. 사실 목사도 교회에 좋은 분들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누구든지 들어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식인종에게도 전해져야 하고, 우리가 미처 다 가지 못한 세계 열방과 나라에도 전달되어야 합니다. 북한에도 전해져야 하고, 우리 주변에 작고 힘없는 어려운 이웃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이 온 세상 만물을 살피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가진 자에게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과 그 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떨림이 동일하게 전해집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교사님 한 분 한 분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교를 보낼 뿐만 아니라 선교사님 한 분 한 분을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선교할 수 있는 마인드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그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원하십니까? 그럼 먼저 나보다 약하고 힘든 대상에게로 가십시오. 가장 좋은 전도의 방법은 먼저 우리가 내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보다 못한 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상처입은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져야만 넓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가지려면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야만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섬길 수 있습니다.

제가 SMBC(Sydney Missionary & Bible College)에서 겪은 신학교 교수님들은 참 겸손하셨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은지 몰라도 한국에는 학교 식당에 학생 식당과 교수 식당이 따로 있어서 교수와 학생이 같이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교수와 학생 구분 없이 같은 장소에서 식당을 이용했습니다. 스프와 빵만으로 식사해야 할 때조차 교수와 학생이 같이 먹고 어울려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는 데 저는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십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마 11:28-30

우리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경험하면 참 마음이 편안합니다. 여러분도 어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참 편안한데, 또 어떤 사람과 만나면 뭔가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내게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싶어 합니다. 나에게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저도 아무 말 없이 같이 앉아 있기만 하는데도 상대가 줄줄줄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많이 힘들지?” 이 한 마디만으로 함께 울어주고 위로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살려내심, 윤치영

†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장 34, 35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로마서 12장 10절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빌립보서 2장 4절

† 기도
날마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기 원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이 나의 위로가 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소속되어 있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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