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죄와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는 안타까운 상황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람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의 소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언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특히 에스겔서에는 ‘더럽히다’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비롯한 다양한 죄로 스스로를 더럽혔다(겔 20:30).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 겔 22:3

더 나아가 그들의 더러움은 사회를 오염시켰다. 한 사람의 바이러스 감염자로 인하여 전염병이 사회로 확산되듯이, 그들의 영적 문제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국가적 도덕성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겔 33:26).

주님은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의하신다.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 겔 43:8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실수와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손상이 입혀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백성을 심판하시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 아닌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한 딜레마 앞에 서시게 된다. 우리의 죄를 그냥 참고 넘어가실 것인가, 아니면 심판을 집행하실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이유로 우리의 죄를 못 본 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을 입는다. 불의를 보고도 묵인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도, 의로우신(righteous) 분도, 정의로우신(just) 분도 아니라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가 죄를 저지른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부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을 향한 또 다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가 그랬다.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시는 분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금이 간 것이다.

혹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기 원하셨지만 강대국의 힘이 워낙 세서 침략을 막지 못했다고 변명한다면, 결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저지르는 순간, 하나님이 죄를 묵인하시든 심판하시든, 이렇게 하시든 저렇게 하시든 하나님의 이름에 손상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럼, 이런 딜레마 앞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일단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지키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정해진 기일이 차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기로 하셨다. 불의를 참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죄를 저지른 백성을 분명 치셨지만, 그 채찍으로 인하여 상한 곳도 구석구석 싸매어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길고 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토(故土)로 귀환할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겔 36:22,23

이 말씀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으로써 그분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과 전지하심을 증명하셨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분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과 긍휼히 여기심과 무한한 사랑도 만민에게 확인시켜주셨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는 주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다. 이 안에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애타는 호소가 깔려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주님의 채찍이든, 치유의 손길이든 그 무엇을 동원해서라도 주께서 친히 주님 자신의 이름을 지켜달라는 애절한 소원이 담겨 있다.

나는 이 간구를 언제나 내 마음과 입술 가까운 곳에 두고 살아간다.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한 가지 변함 없는 인생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그분의 종 된 나의 모습 사이에는 너무나 먼 간격이 존재한다. 나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지난 나의 세월은 주님의 영광을 가릴 수밖에 없는 가능성을 한가득 안고 조마조마하며 지나온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님의 징계와 위로가 내 삶에 언제나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그 이름의 거룩하심을 지켜내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간구를 끊임없이 읊조린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 기도, 다니엘 김

† 말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 레위기 19장 2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디모데전서 4장 5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고린도전서 1장 30절

† 기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 긍휼하심, 사랑을 찬양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존재로 변화시켜주소서. 오직 주님만이 저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께 차별된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모시겠습니다. 주님을 최고로 인정하여 높여드립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선포 앞에 우리를 합당한 존재로 변화시켜주시길, 거룩하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모습으로 빚어주시길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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