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의 커플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알아야 해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식을 두 번 했답니다.

첫 번째 결혼식은 신부의 집에서 치러졌는데 이때는 ‘서약’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두 사람이 서약을 하고 포도주를 반 잔씩 나눠 마신 다음에 남은 포도주를 서약서에 부었어요. 이는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겠다는 영원성을 상징했지요. 이후 신랑은 신부를 홀로 두고 자기 집으로 떠났어요. 1년 후에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서요. 그런데 사실 돌아올 날은 신랑도 몰랐어요. 전적으로 신랑의 아버지가 결정했거든요.

첫 번째 결혼으로 혼인은 성사됐지만 이후 1년 동안 남편은 신혼집을 준비하고 아내는 결혼 준비를 했지요. 예수님이 다락방 강론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라고 하신 게 이 결혼 문화에 근거한 표현이에요.

신랑 아버지가 정한 날이 되면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에 데려와서 두 번째 결혼식을 했어요. 첫 번째 결혼식과 두 번째 결혼식 사이에는 육체적 관계가 허락되지 않았고, 심지어 만나는 것도 금지됐지요. 자,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를 했으니 요셉 입장에서는 마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마태복음 1장 19절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해요. 여기서 “의로운”은 행동이 의롭다는 것보다 ‘율법에 신실하다’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앞뒤 문장이 연결이 잘 안 되지요?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면 율법에 의해(신 22:23-27) 마리아를 고발하고 공개적으로 진상규명에 들어가야 해요.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어야 정상이고요.

그런데 의로운 요셉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마리아를 긍휼히 여김으로 보호하고 조용히 덮어주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의로움’을 배울 수 있어요. 이 의로움의 극치가 바로 ‘십자가의 의’예요. 십자가의 의도 우리의 행위를 분석하고 고발하는 게 아닌 덮어줌, 즉 긍휼의 극치인 거지요.

그럼에도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은 충격이었어요(마 1:20). 그래서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모든 걸 설명해주셨지요. 이 일이 왜 요셉에게 일어났는지가 “다윗의 자손 요셉아”(마 1:20)라는 호칭에 담겨있습니다. 다윗의 가문으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 때문이지요.

주의 사자가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며 그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해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마 1:21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며,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임을 알려주지요.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마 1:22, 23

또 이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 즉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된 임마누엘 예언의 성취임도 알려주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여기에도 비밀이 있어요.
원래 이 말씀은 불신하는 아하스에게 주셨던 말씀이에요. 유다 왕 아하스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에 두려워 떨 때,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아하스는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실질적인 힘인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하지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임마누엘의 말씀을 주셨지만 아하스는 불신했어요. 실제로 이사야서에 쓰인 “처녀”라는 단어는 ‘젊은 여자’라는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러니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라는 말에 감흥이 없을 수밖에요. 반면 마태복음 1장 23절에 쓰인 “처녀”는 명확하게 ‘동정녀’라는 뜻이에요. 요셉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24,25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대로 실행합니다. 아내를 데려왔지만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지요. 어떻게 그런 믿음이 생겼을까요? 앞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 즉 율법과 말씀에 능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는 이사야서 말씀을 알았고, 그 말씀이 자기 삶에 임한 걸 깨달았던 거예요. 동일한 말씀이 아하스와 요셉에게 주어졌지만 둘의 반응은 천지 차이인 걸 볼 수 있어요.

말씀을 붙들지 않은 아하스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었지만 말씀에 생명을 건 요셉에게는 인생이 바뀌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지요. 이처럼 말씀이 모두에게 주어져도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임을 고백하며 붙잡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계시가 열린답니다.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목숨을 걸고 받아들였듯이 말이지요.

중요한 건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에 말씀이 심겨있어서 천사가 말했을 때 소통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 눅 1:37,38

“죽으면 죽으리라!” 이 고백이 있는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어요. 요셉과 마리아, 두 사람은 소위 금수저도 아니고 대단한 스펙도 없었어요. 몰락한 촌 동네의 평범한 커플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알고 순종한 게 그들의 스펙이 되었어요.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나라에 사용하셨지요.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우리는 매 순간 변하는 세상의 스펙이 아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영원한 스펙을 쌓아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법이랍니다.

-난생처음 성경공부: 마태복음, 이지남

† 말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신명기 8장 3절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편 1편 2절

† 기도
하나님, 말씀에 생명을 건 요셉과 같은 이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내 입술로 고백하며 붙잡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말씀이 심겨져서 주님과 소통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나의 스펙이 되도록 하소서.

적용과 결단
매 순간 변하는 세상의 스펙 아래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당신에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는 비법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말씀을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눈을 돌려 영원한 스펙을 쌓는 일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자분들을 응원해주세요!!


▷예배와 생활을 은혜롭게 돕는 디지털 굿즈
성경필사 pdf 디지털스티커 성경인포그래픽 디지털굿즈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