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국가의 최우선 과업, 수도 이전(사무엘하 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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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북이 통일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나(다윗)는 지도자로서 이 부분을 깊이 고민해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도록 마음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수도를 잘 정해야 했다. 남쪽의 수도 헤브론도, 북쪽의 수도인 마하나임도 아닌 제3의 장소를 물색했다. 나에게 가장 눈에 띄는 장소는 예루살렘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다. 이방인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었다. 사방이 이스라엘이지만 이 지역만은 가나안 정복역사에서 여전히 점령을 못한 채 알밖기 땅으로 남아 있었다.

<여부스성 모델.  Origin: www.archaeologyillustrated.com>

두더지 작전을 실시하다
여부스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했던 것에도 일리가 있다.

예루살렘이 정복하기에 매우 어려운 요새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골짜기들이 있었다.
그런 탓에 여부스 사람들은 자신만만했다. 있는 힘껏 나를 조롱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비밀통로를 알아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이 지역에 대해 샅샅이 알게 된 데에도 나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동안 아둘람 동굴, 엔게디의 동굴 등 숨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다 다녀본 내가 아니던가! 특히 동굴은 안전을 확보할 최적의 장소였다.

어느날 기드론 골짝기를 따라 도망 중일 때 목이 너무 말라 샘을 한참동안 찾은 적이 있다. 그때 기혼샘에 다다랐고 이곳에서 물을 마시던 중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갈한 나는 다시 힘을 내어 동굴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당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부스 사람들이 마실 수 있도록 ‘식수를 운반하는 통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이 발견은 예루살렘 함락 작전을 구상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한때 서럽기만 했던 도망의 길이 훗날 작전의 키가 된다는 사실에 남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역시나 주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다.

나는 이 작전명을 “두더지 작전”이라고 일컬었다. 그 날, 나는 나의 군대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려거든,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라.” (사무엘하 5:8)

이 터널은 기혼 샘으로부터 물공급터널, 수직터널, 수평커브터널, 계단터널, 터널 입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6백 명에 달하는 우리 군대는 게릴라전에 뛰어난 병사들이었던 만큼, 기혼 샘으로부터 터널을 이동하여 암벽을 타고 올라가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는 여부스 성 안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산성을 점령했다.

 

모두를 포용하기 위해 수도를 옮기다
그렇게 예루살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승리 기념으로 예루살렘성 이름을 다윗성이라 칭했다. 그리고는 이곳을 공식적인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했다.

예루살렘은 남과 북의 중간지역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최적이었다. 만약 헤브론이 계속 수도로 기능한다면 북측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지파에도 속해 있지 않은 곳을 선택했고, 각 지파의 연합 전술을 시도했던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한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천연적인 방어 요새이자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기혼 샘을 통한 수원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배울 수 있었다.
바로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기반이 되는 것을 아까워하지도 말아야 했다.

만약 내가 헤브론을 수도로 유지했다면 어떠했을까?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야 했을지 모른다. 자연히 마음을 모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나의 기반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택했기에 국민들의 마음을 합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책 <다윗 대통령 귀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