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반강제적인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오랜만에 갖는 여유로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했다. 더군다나 독립군 투사 같은 남편과 아버지로 인해 내심 불만이 쌓여가던 아내와 아들들이 더 좋아하는 듯하여 그동안 밀린 것들을 만회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마음 한편에서 서서히 답답함과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러다가 이대로 그냥 끝나는 거 아니야?” 초조해지는 마음으로 주님께 인도하심을 구하며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주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이대로 마냥 있어야 합니까? 주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안을 가르쳐주십시오. 주님, 길을 보여주십시오. 코로나로 사방이 다 막혀 있습니다. Show me the way. 길을 보여주세요.”

그때 너무나 분명한 주님의 음성이 깊은 곳에서부터 내 마음을 때렸다.

“I am the way. 내가 곧 길이다.”

그 순간 나는 놀라운 감동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진리인데, 이렇게 쉽게 놓치고 있는 나 자신이 기가 막혀서 놀랐다.

많은 경우 주님의 진리는 너무 깊고 심오해서 놓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단순하고 쉬워서 놓치게 된다. 항상 주님이 길이셨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도 주님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신가? 나는 길 되신 주님은 놓치고 주변 상황이 주는 불안감으로 수없이 두리번거리며 뭔가 방법과 대안을 찾기에 분주했다. 주님만 빼고….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대부분 우리는 인생에 궁극적 대안이 되신 예수님만 빼놓고 해결책을 찾으려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지금의 코로나, 정치, 경제 그리고 우리 삶의 실제적인 모든 영역에서도 그분의 섭리와 통치를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시다.

나는 이 진리를 깨달은 후 다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님께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대안이나 방법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신뢰와 평강이 나를 덮는 것을 경험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유함이 임한 것 같았다.

물리적인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분께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단순한 진리를 종종 놓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때일수록 말씀 앞에서,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서 모든 염려와 이슈를 내려놓고 온전히 그분에게만 마음과 생각을 고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분을 향한 신뢰와 평강이 우리를 덮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이 깊은 곳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의 핵심도 내 삶의 모든 불안과 소음들을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함으로 그분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주님이 길이며 주님이 유일한 대안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우리가 현실을 무시하거나 앞에 놓인 문제에서 도피하듯 마냥 앉아만 있을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나를 포함해서 지금 믿음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상황 때문에 갈등하고 있지 않은가? 뭔가 하자니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으면서 불평과 낙망의 말만 늘어놓을 수도 없고…. 나 또한 이런 답답함 때문에 기도실에서 기도하며 버티고 있을 때 주님께서 주시는 두 단어가 마음 가운데 떠올랐다.

“Be Still 잠잠할지어다” 그리고 이어서 “In the hope of the Lord 주님의 소망 안에서….”

이 음성을 놓고 다시 기도하는데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감동과 확신이 올 때는 그 의미를 성경에서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시편 37편과 46편에서 말하는 “잠잠할지어다”는 절대 소극적인 태도나 체념하듯 힘없이 주저앉은 모습이 아니다.

문맥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를 해석하면,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서서 얼굴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주시하여 태풍을 버텨내는 모습과 같다. 주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함으로 물이 점점 차고 넘치는 것처럼 충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 시 37:7-9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시 46:10

이 두 구절에서 소극적이거나 낙망하여 좌절한 모습이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다 막혀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지만, 시편 기자는 잠잠한 가운데서도 저돌적인 자세로 주님께 집중하라고 도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믿음으로 기대하고 소망하라는 것이다. 비록 상황은 더 악해지고 어두워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주님이 행하실 일을 적극적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여 그분이 행하실 일들을 여전히 기대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나타내시며 초청하신다.

일이 잘되고 상황이 좋을 때는 누구나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는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 한가운데서도 낙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것, 오히려 소망을 품고 잠잠히, 그러나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이 코로나 시즌을 보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반격, 윤성철

† 말씀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시편 139장 9, 10절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 잠언 3장 25, 26절

† 기도
어려운 이 시기에 무엇보다 주님께 기도하며 집중하게 하시고 소망이신 그분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그분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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