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유명’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명’을 더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자신의 유명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유지하며 독점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합니다.유명’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그것을 주를 위해 사용하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는 참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기업의 대표이든, 가수든, 배우든, 전문 직장인이든 말입니다. 그들의 빛나는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줍니다.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대는 저런 유명한 사람들의 후광을 보며, 그들을 동경합니다. 뭐,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신앙’과 ‘유명’이 결합할 때 나오는 빛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조금 냉정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들이 가진 ‘신앙’과 ‘유명’의 결합으로 비추는 빛도 한때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는 빛을 내지는 못합니다. 당시에는 참으로 유명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결국 그들은 제한적이고 순간적이며 상대적입니다. 사람의 유명은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원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명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이 지극히 제한적인 시간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명을 사용하는 방법은, 그것을 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단순함 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유명이 닳아 없어질까봐 아까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영원히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의 유명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유명하지 않은 그대는, 제가 말한 것들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겠죠.

그거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한 번이라도 ‘유명’을 경험한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경험한 ‘유명’은 정말 유혹적이고 치명적이며 달콤한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그대에게 주어진 동산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수많은 당위성과 핑계를 심어줍니다.

그런 그대에게 에스더를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그 모든 속임수에도 결코 핑계를 대지 않았던 그녀의 ‘유명 사용법’을요.

그대가 알고 있듯이, 에스더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바사(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어려운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에스더는 바사 왕국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말살 정책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 에스더서 4장 13,14절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당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에스더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에스더에게 ‘사명’을 주는 것이죠.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왕비의 자리에 있는 에스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에스더는 분명 무섭고 두렵고 도망가고 싶었을 겁니다.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니까요. 분명 그녀의 위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그 복잡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의문의 덩어리들이 올라올 수도 있었습니다.

‘왜 이것을 해결할 사람이 나인가?’

‘이스라엘에는(포로지만), 여전히 지도자와 선지자가 있는데 꼭 내가 해야 할까?’ ‘질서와 제도와 법이 있는데, 꼭 내가 나서야 하는 걸까?’

‘삼촌의 말을 듣다가,
나마저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면 그것이 더 이스라엘의 위기가 아닐까?’

그녀는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습니다.
꼭 ‘너’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삼촌의 말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서 4장 15,16절

에스더는 핑계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당위들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요구하는 자신의 부르심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유명’을 주를 위해 허비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하면서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 ‘나’여야만 하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반드시 ‘나’여야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생각들이 교만하거나 건방진 것이라고 일축합니다.

마치, 소년 다윗이 사명감을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지만, 다윗의 형제들이 다윗에게 교만하다고 면박을 주는 것처럼요. 그런 타인의 시선, 세상의 시선들이 그대의 마음에서 부르는 사명을 외면하게 합니다. 또 수많은 상식적인 핑계들이 그대를 부르는 사명을 외면하고, 멀리 도망가게도 하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런 태도만큼 못난 모습도 없습니다. 그런 태도만큼 이기적인 모습도 없습니다. 그대의 유명이 조금이라도 손상될까 봐,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악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대가 믿음 안에서 그것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그 지점에, 인간의 인정을 생각하지 말고, 세상의 시선도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유명을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유명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유명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유명 사용법’은 주인의 부르심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혹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유명이 손해 본다면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에스더는 핑계로 도망가지 않습니다.
합당한 이유들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명이 주를 위해서 사용된다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에스더에게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돌을 던질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무명, 김일환

† 말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고린도전서 15장 5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로마서 14장 8절

† 기도
하나님, 높은 자리와 좋은 물건과 영향력, 인지도가 있는 삶! 더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저에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의 위치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유명을 추구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나의 나 됨은 온전히 주님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나는 왜 세상이 말하는 ‘유명’을 가지고 싶은 걸까요? 편안함과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안락함 때문일까요? 그러나 세상의 유명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꼭 ‘나’여야만 하는 부르심과 사명, 십자가 앞에 나는 에스더처럼 이때를 위함임을 기억하고 나의 유명을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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