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할 때 의무와 책임이 따릅니다.
그 무게가 무거워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버팁니다.

놀고 싶지만 회사를 다니고
하기 싫어도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때문이지요.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연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의무와 책임이 사라지면
내 자유의지만 남습니다.

만일 어떤 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의무감도 없고, 대가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내 자유의지는 어떻게 될까요?

부끄럽게도 나는 열정을 잃었습니다.
행위로 받는 삶에만 익숙해졌지요.

의무가 사라지면 사랑이 남아야 하는데
사랑까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가라도 따라온다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눈에 보이는 보상도 없으니
마음의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이 있다고 믿는 자의 모습일까요?
답답함을 솔직히 내어놓고 주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주님, 저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주님이 제게 주신 말씀과 은혜 때문에
붙잡고는 있는데 솔직히 하기 싫어요.

그러고는 이런 일기를 썼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주일에 사랑, 희락, 화평에 관한 말씀을 들었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갈라디아서 5:22

그중에 희락, 기쁨이란 단어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나는 언제 기쁠까?
어떤 소식을 들을 때 기쁨을 느낄까?

정답을 이미 다 알지만
다시 한번 주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옛날 작은 베들레헴 마을에 소식이 들렸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목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나도 이 얘기를 들었다면 함께 기뻐했을까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기뻐하나요?

근원적 기쁨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데
여전히 외부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일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편 37편을 묵상하는데
다시 한번 ‘기쁨’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가 또 넘어진 것 같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너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란다.

네가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내가 너를 잡고 있기에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네 길을 내게 맡기고 의지하렴.

내가 너를 도우며 네 의를 빛과 같이,
네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할 거란다.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말씀으로 기쁨의 이유를 다시 찾게 하셨고,
다시 일으키실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은혜의 힘까지 더해주셨지요.

나는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 한 번도
내게서 시선을 떼신 적이 없습니다.
또다시 그분의 사랑을 맛보며 기쁨을 채워가는 중입니다.
그저 ‘주님은 사랑이시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 나에게 꼭 붙어있으렴, 이화하하(이화선)

† 말씀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 시편 37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빌립보서 4장 4절

† 기도
주님, 나의 기쁨의 이유가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주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언제 기쁜가요?
삶의 주인 되신 그 분으로 인해
기쁨이 넘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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