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눅 14:18-20

누가복음 14장 15-24절에는 잔치에 초대받았으나 사양한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못 가고, 또 한 사람은 소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느라 못 가고, 또 한 사람은 장가들어 못 간다고 한다.

잔치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주인이 베푸는 잔치가 그들의 우선순위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 것을 우선했다. 주인의 초청보다 내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이다.

밭을 산 사람이 보러 간 밭은 오늘 새로 산 밭이 아니라 이미 사놓은 밭이다. 그것을 꼭 잔칫날에 보지 않아도 되는데, 밭을 보러 나간다고 한다. 소 다섯 겨리는 소 열 마리이고, 꼭 그날이 아니어도 되는데 소를 시험하러 간다.

이를테면 새 차를 뽑았으니 시승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가든 사람 역시 그날이 결혼식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한 뒤 가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가정을 핑계로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현실적으로 더 이익이 나는 곳에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을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 땅에서 이익이 되는 것, 밭도 살펴보고, 소도 시험해보고, 장가가서 내 삶도 챙겨야 하니 잔치에는 못 가겠다고 거절한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그 밭, 그 소, 그 가정이 누구의 것인가? 누가 주신 것인가? 주님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다 ‘내 것’이라고 말한다. 내 밭, 내 소, 내 가정을 말하고, 정작 주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나라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세상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자기 일, 자기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둔 자들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 눅 14:21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다리 저는 자는 하나님나라의 유업과 관계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들이고, 예배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잔치에 초대받았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잔치에 초대된 이들은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여긴 오만한 유대인들과 달리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어 감사로 잔치에 참여한다.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눅 14:22-24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갔다는 것, 마을 사람들 말고도 밖에 있는 사람을 데려왔다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이다.

어떻게 이방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천국이 선택받은 유대인들 우선이 아니라 확장되었다고 선포하신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여겼던 자들이 천국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신다.

그런데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기에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나는 비 오는 날 밖에 나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일단 비가 오면 귀찮다. 비 오는 날에는 방 안에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해도 비 오는 날 밖에 나가기는 싫다. 이들은 산울타리 너머에 있다. 멀고 귀찮을 수 있다. 그래서 강권()해야만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강권함을 받은 자들이다.

은혜가 무엇인가?
내가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온 비결 중 하나는 내 곁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천사들이란 나를 위해 강권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 인생에도 이런 천사가 몇 명 있다. 나는 힘들고 싫었는데 나를 강권하여 찬양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데려가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여러분의 천사이다. 천국에 들어오는 자의 특징은 그 강권함을 들은 자이다. 강권함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길 밖에 나가 강권했을 때 그 사람 역시 먼 길을 와서 잔치에 참여했다. 그것은 잔치를 강권했을 때 듣고 참여할 소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중에 잔치에 온 사람들의 특징은 자격이 없든, 강권함을 들었든, 자기 것을 내려놓고 이 잔치에 마음을 두고 살아온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자격이 있다.

유대인들처럼 ‘나는 자격이 있어! 나는 이 정도로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세상 것에 마음과 우선순위를 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천국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 조건에 있지 않다. 그가 맹인이든, 절름발이든, 멀리 있든지 상관이 없다. 이 잔치에 우선순위를 둔 자, 이 잔치에 마음이 없었는데 강권함을 들을 수 있는 자, 이 잔치를 향하여 삶의 방향을 둔 자들이 자격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긋지긋하게 말을 듣지 않는다. 강권해도 안 듣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크신 은혜와 기회를 베풀어주실 때 우리는 듣는 싸움을 해야 한다. 신앙은 방향을 돌이키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소리를 듣고 180도 방향을 돌이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천국이 아무리 가까이 왔어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천국을 붙잡을 수 없다. 돌이키려면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망하는 자들의 특징이 있다. 지겹게 말을 안 듣는다. 그것을 보고 미련하다고 하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훈계와 교훈을 듣지 않는다. 그 미련함을 보고 “목이 곧은 백성이다”, “강퍅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천국을 향한 시작은 강권함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준비하고 있으라, 김남국

† 말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 시편 62편 5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로마서 12장 1절

† 기도
하나님, 나의 것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겠습니다. 나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크신 은혜와 기회를 베풀어주실 때 듣는 싸움을 하며 귀 기울여 듣고 따르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천국을 향한 시작은 강권함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함을 마음에 새깁시다. 나의 요구사항만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말씀드리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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