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 9절은 우리가 죄를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요셉은 매일 유혹하는 상전을 향해 이렇게 대답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대답이 여기서 끝났으면 요셉은 끝내 죄를 지었을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여긴 아무도 없다. 보디발은 몇 주 후에 온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사람이 대상이 아니다. 요셉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 죄는 유혹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 때문에 짓는다. 죄를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죄를 정당화하지 마라. 타협도 절대 안 된다. 각별하게,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죄를 대하라. 그렇지 않으면 매일 다가오는 유혹에 매번 이길 수 없다.

유혹은 매번 더 강해진다. 오늘의 유혹은 어제보다 강하다. 보디발의 아내도 더욱 강한 유혹으로 요셉에게 다가갔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창 39:10

여기서 키워드는 ‘날마다’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한 번만 유혹한 게 아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진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더 강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요셉이 뿌리치기 쉬운 유혹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자신을 찾아온 유혹보다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한 동행이 더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달콤한 유혹보다 날마다 함께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더 가치가 높았다는 뜻이다.

구덩이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았던 요셉에게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하나님과 함께함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죄악의 유혹이 아주 강하게 찾아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면

절대로 오늘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오늘의 은혜로, 오늘의 동행하심으로,

오늘의 함께하심으로 살지 않으면

오늘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어제는 어제의 은혜가 있어서 이길 수 있었다면, 오늘의 유혹은 오늘의 은혜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어제 이겼다고 오늘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제 다시는 안 먹어도 될 것처럼 밥을 많이 먹어서 아무리 배가 불렀어도 오늘 식사 때가 되면 또다시 배가 고파지고 또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어제 은혜 받았어도 오늘은 오늘의 은혜를 또 받아야 한다.

어제 영적인 양식을 먹었다고 오늘 괜찮으면, 영적으로 병든 것이다. 어제의 기억으로 신앙생활 하면 안 된다.  오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홍민기

† 말씀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 시편 119장 13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 골로새서 3장 23절

† 기도
오늘의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오늘을 힘있게 살아가 유혹에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의 은혜로, 오늘의 동행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오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 당신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이겨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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