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버지를 모르기때문에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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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일이 생기고 재정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주님, 나에게 왜 이러세요? 제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라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를 제대로 안다면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주님, 그럼에도 주님이 함께 계심에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될지 않을까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가길 원합니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_누가복음 15:11-13

둘째 아들은 기막히게 나쁜 놈이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아버지가 죽으면 첫째 아들이 재산의 3분의 2를 받고, 둘째 아들은 3분의 1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재산을 요구하면 10분의 1을 받게 된다.

유산을 받은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현금으로 바꿨다. 아버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물을 다 모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국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말 다 잃어버린 탕자가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못된 아들을 기다린다.
탕자는 세상에 나가 진탕 고생을 해보니 아버지가 종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차마 아들이라고 말 못해도, 종으로는 써줄 것 같은 아버지의 인격과 아량을 생각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그 정도밖에 모르는 자식이었다. 잘못한 아들을 품어주는 아버지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종이 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아버지를 정말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를 몰라서 집을 떠났고,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보았을 때 아버지가 보인 행동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로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아버지는 당장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며 아들을 받아준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맏아들이 있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며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고 그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맏아들은 노하여 계속해서 잔치에 들어가지 않는 모습이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계속 권하는 모습이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_누가복음 15:28

결국 이 비유는 두 탕자의 이야기이다.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고 아버지를 떠나버린 막 나가는 탕자와 아버지 곁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돌아온 동생을 받아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탕자이다. 맏아들 역시 나쁜 놈이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 아버지는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눅 15:31)라고 말한다. 헬라어 표현으로 애정을 담아 부른 것이다. 나 같으면 들어가자고 계속 타일러도 거부하면 몽둥이를 들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다. 우리가 자녀답거나 효자이거나 뭔가를 해서 받아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진정한 가치는 ‘자녀’이다.

나도 아들이 죽을 뻔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들 대신 나를 데려가시고 그 아이를 살려주시기를 기도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스도인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너 그렇게 살면 구원받을 수 없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자녀이기에 구원받는다. 우리가 한 행동에 따라 주시는 상급과 맡겨주신 기업이 다를 수 있지만, 자녀인 우리는 구원받는다. 우리는 잃어버린 천국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나를 찾으러 오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구원을 받는다. 천국에서 참여하게 될 잔치를 생각하며, 지금 나의 행함으로 받을 상이 있는지를 계산하고 제자답게 살아야 한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오랜 기다림과 회복의 가치를 모르고 돈의 가치로 따졌다. “내가 아버지 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나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준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처럼 따진 것이다.
<준비하고 있으라> 김남국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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