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이렇게 하는게 너에게도 좋은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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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양육하다보면 너무나도 자주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니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니까… 그냥 부모말 들으라고.. 내가 살아도 너보다 훨씬 더 오래 살면서 깨달은거라니까.. 왜 이리 말을 안들어. 꼭 아닌걸 해야겠니?”
이미 경험한 수많은 실패를 통해 얻은 결과일지라도 자녀에게도 실패와 경험을 통해 얻을 기회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판단과 규율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경험하고 배워야 합니다.
부모는 이미 깔린 좋은 길로 걸어가게 하고 싶지만 아이신발에 흙이 묻고 넘어져 상채기가 날지라도 그 돌을 치워주기 전에 먼저 기도로 그 길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부모가 되길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라는 인물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가 어떤 배경에서 성장하였고,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해야 문제의 근원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서도 안 되지만 과거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아하스 왕이었다.
남왕국 유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악한 왕을 꼽으라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이다. 그다음으로 악한 왕을 정하라면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이다.
이것도 아이러니다. 어떻게 히스기야와 같은 대단한 왕을 사이에 두고 위로 아래로 가장 악한 왕들이 나올 수 있느냐 말이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우상숭배와 악법을 행하는 것은 기본이고,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전에 있는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을 닫아버리고 심지어 자녀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까지 저지른 참으로 어리석은 왕이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성경 본문에 “아들들”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여러 아들들을 제물로 바친 것 같다. 연대기를 계산해보더라도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 왕의 어린 자녀가 아닌 장성한 아들 가운데 속한다. 그렇다면 아하스 왕이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히스기야 역시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강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번 상상해보라! 아버지라는 왕이 미쳐서 온갖 우상숭배와 죄악을 행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자기 아들들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눈이 벌게져 있는 것을 보는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불에 태워져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형제들을 보면서 자란 히스기야가 과연 정상이었을까?

이런 과정을 통과한 후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죽고 마침내 자신이 왕이 되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어마어마한 영적 개혁을 단행하여 나라를 새롭게 하기 원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과 경외함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아버지 아하스를 향한 진절머리나는 아픔과 고통을 지워버리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도 있다.

그는 가장 먼저 성전의 문을 다시 열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불러 성전을 수리하고 모든 기구를 다시금 회복시킨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와 규례를 좇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유월절 규례를 말씀에 따라 지키도록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대하 30:26,27

그렇게 성전과 제사가 회복되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나라 안팎의 모든 우상과 제단들을 제거하는 영적 정화 작업을 시작한다. 이어서 십일조와 성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일들도 일어난다.

우리가 이 부분을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성전과 제사가 회복되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모든 우상과 죄악을 파하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들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의 회복을 통해 큰 은혜와 기쁨을 체험하자 성도들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우상들을 제거하고 죄악 된 것들을 끊어버리는 영적인 개혁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깊은 은혜와 기쁨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이 일어나 스스로 결단하고 정리하는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이런 은혜와 기쁨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말씀이라는 기준을 율법처럼 적용해서 “이것은 죄니까 제거해야 해!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면서 압박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실수를 너무 자주 한다.
주님을 깊이 만나기 전에 연약했던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초신자들을 규율과 말씀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고 강요한다. 흔히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은혜와 기쁨을 먼저 경험해야 한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도 사랑의 기쁨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동기와 목적으로 죄를 끊고 결단하고 돌아오겠는가? 예배 가운데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의 반격>윤성철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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