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파킨슨병이래.”

2014년 가을, 아프리카로 간 지 1년 3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쉽지 않은 정착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기라고 여길 즈음이었다.

아프리카 도착 후 3개월 만에 극심한 말라리아에 걸려 상당히 긴 시간을 병상에서 지냈다(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300미터가 넘는 고산 지역이라 말라리아가 없지만 매달 출장을 다니던 남수단에는 창궐했다). 말라리아는 원충이 몸의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에 병이 나은 후에도 심한 빈혈 등 각종 후유증이 따랐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소진된 기초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 질병이었다.

나는 고열 때문에 온몸을 심하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복이 되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손에 약한 떨림 증상이 남아있었다. 특히 왼손이 더 두드러졌다.

말라리아 후유증 정도로 여기며 지냈다. 그런데 걷거나 체중이 다리 쪽으로 실릴 때마다 오른발 발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점점 심해져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딛기가 힘들 정도까지 되었다.

그래서 추석 연휴와 주말을 끼고 열흘가량 한국에 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내원하여 친구이자 재활의학과 교수인 병모에게 몸 상태를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내 왼손의 떨림이 정지 시에도 나타나는 걸 보고 신경과 진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신경과 진료와 검사를 받은 후에 파킨슨병(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로 발생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뇌에 병변이 좀 더 진행된 상황에서 몸의 왼쪽이 영향을 받아 오른발에 부하가 걸리면서 아팠던 것이다.

곧 마흔 생일을 맞을 즈음이었다. 나는 왼손잡이 외과의사였다. 소아 간 이식 수술을 하던 외과의인 내게는 너무나 절망적인 선고였다.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나 파킨슨병이래.”

“응? 파킨슨?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어…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이야….”

“치료는 되는 거지?”

“아직은 치료가 안 되는 병인 것 같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학교에서 전화를 받은 아내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 되어 동료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도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다가 점점 눈물이 늘었다. 하지만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마음을 놓은 적은 없었다.

어느 새벽, 운동 겸 산책과 기도를 하기 위해 인근 공원에 갔다. 혼자 산책하는데 갑자기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가려다가 나무가 우거진 곳 아래로 몸을 피했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거의 비를 맞지 않고 서있을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마음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주님이셨다.

비가 온다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나는 소나기 속에 있는 거구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그 나무 아래에서 내 인생을 해석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빗줄기가 잦아들더니 그쳤다. 나무들 아래에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기는 전보다 신선했고,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자유롭고 신나게 그 아침의 축복을 다 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께 왜 이런 병을 허락하셨는지 여러 번 여쭈었지만 답을 주시지 않았다. 단지 내가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가던 발걸음을 돌이키지 말고 계속 가라는 마음만 주셨다.

병원 외래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동행한 어머니가 담당 신경과 교수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치료받아야 하지요?”

글쎄요, 이 병은 약을 복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어서 그곳이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나는 이 말을 또 한 번의 확인 응답(confirmation answer)으로 받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에티오피아에 있는 아내도 기도 가운데 응답을 받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던 어느 날,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함께 모든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평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여쭙자 주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다. 아내는 예수님의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고 한다.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어 품에서 아래를 보니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그 길에 가시와 불덩이와 못과 돌들이 잔뜩 깔려있었다.

예수님의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예수님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아, 이 길을 가는 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구나. 나는 그분의 품에 안겨서 가는 거구나. 그 임재 안에 있는 복을 누리는 거구나.’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 시 27:1

더 이상 절망과 슬픔의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여전히 병과 함께였지만 주저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우리가 마주한 인생의 문제를 해석하는 힘을 주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인생의 위기를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며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즈음 시편 16편을 보았다.

하나님, 나를 지켜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나더러 주님에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
– 시 16:1,2

그렇다. 나는 그저 주님께 피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피난처’
라고 고백하며 그분 앞에서 울었던 것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내 분깃은 주님이시며,
내 미래도 그분이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다
(시 16:5).

에티오피아를 떠난 지 정확히 50일 만에 다시 아디스아바바 볼레국제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나는 기쁨과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땅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족에게 주신 땅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시 16:6). 주님이 함께해주시고 동행하신다고 하셨다.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약속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나도 받았다.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 몸도 아무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서 죽음의 세력이 나의 생명을 삼키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 시 16:8-11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세 아들을 힘껏 안았다. 이곳에서 모두 함께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주님, 이곳에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를 다시 한번 불러주셔서요.’

– 깨어진 그릇, 김태훈

† 말씀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 나훔 1장 7절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 시편 62편 8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장 27절

† 기도
하나님, 매순간 어려움을 만납니다.
막막함 속에 좌절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며 나아갈 때 저와 동행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제가 받을 수 있는 그 최고의 복을 지금 이 순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가는 이 길이 저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과 늘 즐겁게 가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오늘도 당신은 ‘주님만이 내 인생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합니까? 그 고백 앞에 우리가 할 것은 감사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음을 당신의 입술로 고백하며,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동행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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