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가장 완벽한 중보자, 단 한 명뿐인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 딤전 2:4-6

우리는 히브리서 9장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히 9:15

그리스도께서도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주셨고 다시 나타나실 때에는 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당신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 히 9:28, 공동번역

히브리서 9장 15절의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는 히브리서 9장 28절에서 말하듯이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으므로 첫 언약(구약 제사를 통해서는 사람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의 실패를 스스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단 한 번의 완벽한 구속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를 믿고 갈망하는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중보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방법, 구원의 프로세스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이 땅에서 죽고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거짓으로 재림 예수인 척해도, 심장 박동기가 ‘0’이 되는 순간 지옥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저주받은 인생에 불과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히 9:27

우리는 이 말씀을 절대 소홀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이유도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때를 위함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지 못한다면, 영생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죽음의 권세 가운데서 건짐을 받지 못한다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 12:2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 또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 히 7:24,25

예수님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중보해주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경험할 수도, 볼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된 우리의 사고입니다. 주님은 항상 살아 계시며, 오늘도 내일도, 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지금도 간구(중보)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중보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부분입니다(요일 2:1,2). 우리의 영생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속죄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중보기도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달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히 10:29)라는 말씀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는 대속의 기도도, 속죄하는 기도도 아닙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는 죄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에 하나님 앞에서 살려달라는 ‘몸부림’이고, 속죄의 은총을 간구하는 ‘울부짖음’이며,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자들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께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나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싶지만 삶이 어려워, 낙심되어, 절망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포기와 낙망의 절벽 끝에 서 있는 믿음의 식구들, 이 나라와 민족, 열방,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이타적인 기도입니다. 나를 주께로, 너를 주께로, 우리를 주께로 인도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중보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라고 요청하십니다. 더 이타적인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세상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안에만 머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 지금, 다시, 중보기도, 이진황

† 말씀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요한복음 16장 2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 고린도후서 2장 14, 15절

† 기도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의 기도가 안에만 머무르는 기도가 아닌 세상을 향하여 뻗어나가는 기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중보기도가 교회를 살리고 세상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우리의 중보기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위해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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