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중보기도자는 어떤 기도를 올려드려야 할까요? 시편 99편에는 의미 있는 시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 시 99:5,6

시편 99편의 기자는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을 하나님과 이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중보가 민족을 살리는 기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구원자로서 중보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과 백성의 중재 역할을 감당하던 중보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중보기도는 모세와 아론의 중보기도를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이 민족을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이 시대의 교회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가, 아론이,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했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 통치의 통로로 사용하셨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용서로, 때로는 그들의 기도에 직접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행정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의 위정자이지, 하나님나라의 통치자들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이 땅에 세워 나가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기 위한 도구이자 몸부림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은 늘 충돌합니다.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과 돈과 명예, 그리고 이념에 따라서 선을 긋고 편을 가르지만,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은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합니다. 사랑과 용서, 평화와 배려, 자비와 긍휼, 인내와 이해의 삶을 요청하지요.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모형이라면,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민족, 나라와 열방,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되어야 하고, 사무엘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에 휩쓸리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중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을 때,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 삼상 15:22,23

혹시 우리도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중보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즉 나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부르심이요, 간절한 요청입니다. 천박한 자기중심적, 물질 중심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남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기도를 부탁하고 계십니다. 제발, 은혜를 경험한 사람답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은혜에 빚진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다는 사무엘의 말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을 때, 여호와께서도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사무엘은 말합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를 잊어버린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지금, 중보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용서받은 자, 은혜 입은 자, 구원받은 자,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제목을 허락하셨고, 기도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용서받은 자답게 지금 바로 중보의 기도를 시작합시다.

– 지금, 다시, 중보기도, 이진황


† 말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전도서 4장 9~12절

† 기도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처럼 공동체를 위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로 서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남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기도를 매일 올려드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인 우리는 지금 중보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이웃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개척교회 목회자분들을 응원해주세요!!


▷예배와 생활을 은혜롭게 돕는 디지털 굿즈
성경필사 pdf 디지털스티커 성경인포그래픽 디지털굿즈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