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주체인 ‘나’라는 자아의식체는 혼(의식)이다. 거듭난 자는 그 영이 이미 구원을 받아 영적 존재가 되었지만, 그 영을 나타내어야 할 혼은 여전히 과거의 생각과 감정뿐만 아니라 신체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말은 ‘나는’이라고 하는 자아의식체인 혼이 여전히 자신의 신체, 생각,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거짓자아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주체인 혼은 타락 전의 위치였던 하나님의 영의 통치를 받는 소생된 혼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거짓자아의 종노릇하는 타락한 혼으로 남아 있다. 즉 구원은 받았지만 그들의 삶의 주체는 구원 이전의 존재와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타락 이전 때와 같이 혼이 원위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혼이 몸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말은 혼이 무의식 가운데서 스스로 뇌의 활동으로 나타난 생각과 감정을 선택함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과 감정을 자신인 것처럼 여기는 속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바로 혼이 몸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에 속하게 되어 성령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의식을 가지게 된다.

[마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프쉬케 : 혼)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시 23:3] 내 영혼(히, 네페쉬, 70인역 헬, 프쉬케)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거짓자아)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져야 한다.

이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주체는 누구인가? 마음인가? 마음이 생명이고 목숨인가? 그렇지 않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주체는 혼이다. 거짓자아는 타락한 혼이 자신의 신체와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존재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이상 진리도 아니고 나(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자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놓아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생각으로 만든 상상의 이야기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생각과 감정이 진실이라고 믿고,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판단하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스스로 질문해보라.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까? 우리의 혼(자아의식)은 우리의 생각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거짓자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라고 여기는 것이다.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현실과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괴리감 때문 아닌가? 우리가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제한과 부족함과 불안과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누가 우리가 그 상태라고 말했는가?

내가 ‘제한되었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두렵다’라는 우리의 생각 때문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문한다. “당신 말도 맞다. 그렇지만 현실이 이런데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올까?”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당신 생각일 뿐이다. 제발 당신의 생각에 당신 자신(혼, 자아의식)을 맡기지 말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의 주체인 혼이 자기의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짐으로써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자기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타락한 혼이 몸에 기초하여 자신(자신이 만든 상상의 이야기)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으로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것, 바로 죽는 것이다(이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거짓자아를 유지시키기 위한 의도와 목적으로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제 목숨(프쉬케)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의 진짜 의미이다. 이때 목숨은 몸의 죽음이 아니라 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평생 자기라고 믿었던 거짓자아를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이라고 하는 자기의식을 포기할 때 비로소 타락한 혼이 아닌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소생된 혼’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소욕에 붙들려 있는 혼이 성령의 소욕에 이끌림으로 그 역할과 기능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죽기를 무서워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타락한 혼이다.

거짓자아는 타락한 혼이 세상을 통하여 자신을 만든 것이다. 즉 감각기관을 통하여 들어온 정보들을 뇌에 저장하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자기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자아 자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거짓자아에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제는 거짓자아에 종노릇하는 타락한 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소생된 혼이 되어 성령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 수수께끼 같던 영혼몸의 비밀이 풀린다, 손기철

† 말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기도
걱정과 근심,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모두 내어 맡기고 나를 부인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구원받은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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