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호흡하는 공기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라. 쉬지 않고 전신에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뇌는 어떠한가?

이러한 공기와 심장 그리고 뇌에 고마운 마음과 감사를 느껴본 것이 언제인가? 그리고 이것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본 적이 있는가? 그것 없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늘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그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놀라운 선물의 진정한 가치와 소중함도 잊고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는가?

온 우주의 모든 생명체 중에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밖에 없다. 물론 천사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고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비교했을 때 제한된 자유의지이다. 일례로 성경은 천사의 자유의지를 가리켜 한 번 타락을 선택하면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제한된 자유의지임을 암시하는 구절들(벧후 2:11 ; 유 1:6)이 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신 것이 바로 이 땅의 창조이다. 그분이 왜 우리를 지으셨을까?

그리고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자녀들을 창조하셔서 그들과 인격 대 인격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그들로 하여금 그분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통치하기를 원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해도 그들과는 제한된 쌍방향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격 대 인격, 부모 대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셨고,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을 오해한다. 그러나 선악과에 담긴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과 공의의 현현이며 우리를 참 자녀로 부르시는 초대장이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본래 가장 좋은 선물은 가장 보기 좋은 곳에 두는 법이다. 신적 생명이 담긴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상기시켜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나란히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공의가 담겨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나무를 하나님의 관점인 사랑과 공의의 발로(發露,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로 보지 않고, 타락한 인간 중심의 관점인 죄의 규정(規定)으로 본다.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 결과 이렇게 혼돈과 혼란이 가득한 세상이 되게 하셨는가?”, “그분이 정말 전지(全知)하시다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아셨을 텐데, 아셨다면 막아주셔야 진정한 사랑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담긴 하나님의 본심은 모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선악과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의지라는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 담겨 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만 있는 로봇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 것인지, 아니면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아독립적 개체로 살 것인지,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은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다.

그만큼 우리를 존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통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개혁신학에서는 창세기 2장 16-17절의 말씀을 행위언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것은 언약 이전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자녀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나타내도록 허락하신,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공의에 기초한 하나됨의 초청장이다.

따라서 이것을 언약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미리 예정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에게 하나님과 버금가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여 서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시고, 자의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이 담긴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행하신 창조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과 공의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과연 자녀인 인간을 언약적인 관점에서 창조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도 죄를 짓기도 전에 말이다.

우리의 자녀를 생각해보라.
오직 사랑으로, 내 모든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가? 물론 자녀들이 죄를 지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죄를 지을 것이기 때문에 미리 언약을 맺어 관계하겠는가?

우리의 혼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마귀에게 속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를 주신 것이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생명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고 다스리고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사탄의 말에 속아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과 자격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뱀에게 들어온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속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가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마귀의 말에 유혹된 것이다.

[창 3:4-6]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자 느낌일 뿐이다. 그렇다면 마음에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의지적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누구인가? 바로 자유의지를 가진 혼(자아의식)이다. 혼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것, 자신을 즐겁게 하는 생각과 느낌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를 짓는 것이고,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이며,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하나님과의 생명과 사랑의 관계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에 종속된 존재로 타락했다. 즉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만 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남아야 할 세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 그 후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의식’이 아닌 타락한 인간의 ‘생존의식’으로 이 세상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타락의 결과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죄책감, 두려움, 결핍감, 수치심, 무능감을 가지게 했고, 인간은 이러한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감추거나, 무시하거나, 억압하기 위해 태어나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생존 모드’ 또는 ‘투쟁 모드’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두운 세상에서 가장 자유하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혼(자아의식)이다. 자유는 자유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선택하는 주체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무엇 때문에 자유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결정하는 내가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기 때문에 자유한 것이다. 인간은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심에 하나님을 떠났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자유는커녕 속박과 어두움과 죽음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원한 소망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 가운데서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의 결과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하나 되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안식 가운데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 수수께끼 같던 영혼몸의 비밀이 풀린다, 손기철

† 말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요한복음 15장 9, 10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6절

† 기도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는 죄를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반역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라는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랑과 은혜의 상징임을 날마다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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