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부러워하는 의학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나에게 남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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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진로를 고민를 결정하며 고민의 세상적 기준임을 깨닫고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앞에 나갔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실 부모의 고생은 하면 되지만 자식의 삶이 좀 평탄하고 순조롭기를 기도하는게 머가 문제일까 생각할때, 이런 마음은 아이에게도 흘러가 아이도 행복하지 않은 모습이였습니다. (기준이 세상이다보니 흔들리는 배 같은 기준이였던거겠죠?)
부모의 기도의 무릎으로 다시 아이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주님 내 아이의 인생 가운데 만나주시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주세요. 주님만이 온전한 기준이시 되시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유명하게 사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때가 있었다.
그걸 향해 정말 많이 노력했고, 고등학교를 전교 3등으로 졸업한 후에 서울대학교 의학과에 진학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전, 인생의 목표는 탁월함을 전제로 한 자아실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아가 무엇인가’였다.
내 자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경쟁에서 질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나에 대한 사랑만 가득했다. 남들이 날 알아보고 날 위해 살아주기만을 원했다.
이것이 사랑과 인정에 대한 목마름과 거절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드러났다.

(아내가 대학 1학년 때 교회 대학부에서 나를 처음 봤을 때는 그다지 겸손하게 보이지 않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아내는 대학부에서 사라졌다가 9년 만에 나와 재회했는데,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런 내게 대학부 선배들이 ‘다른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환영하며 받아주었다. 나보다 이기심이 훨씬 적어 보였고, 앞다투어 내게 잘해주면서도 겸손하고 온유했다. 고등부 때 다니던 다른 교회 친구들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이게 뭐지? 저들도 나 못지않게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은데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당당함이 있네.’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예배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1993년, 대학부에는 약 50-80명이 모였다.
그런데 절반이 넘는 지체들이 10-20분 넘게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춤을 추거나 엎드려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렸다.
‘아니, 이 광적인 분위기는 또 뭐지?’
오후 2시에 시작한 예배와 모임이 다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러 가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 1학년 가을 학기 시작 즈음이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물밀듯 밀려와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존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뻐한다.’

하나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아무 조건 없이 용납하시며,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셨다.
내 안에 말할 수 없는 자유와 평안, 기쁨이 충만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졌고, 각종 성경공부 모임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학부 막내였지만 동기들에게 기도회를 제안했고, 성경공부 모임도 만들었다.

“얘들아, 요한복음 성경공부 모임을 하려고 해.”
“그래? 모임 인도자는 누구야? 어떤 선배가 도와주신대?”
“어… 그냥 우리 기수끼리 하려고. 모임 인도는 내가 해볼까 해. 성령님에게 의지하고 기도하며 묵상한 내용을 같이 나누면 될 것 같아.”

그러나 곧 모임을 제안하고 인도자가 된 걸 후회했다. 매주 성경공부 전날이면 공부 시간에 다룰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장시간 말씀에 매달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성령께서 내가 미처 몰랐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거나 특정 구절을 콕 찍어 마음에 새겨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계속 경험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_마 13:52

하나님을 아는 기쁨이 커짐과 동시에 내게 일어난 중요한 일은, 가치관의 변화였다.
경쟁과 비교 대상이던 친구와 동료가 더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겸손’이 하나님의 성품임을 알았고, 유치환 시인의 시구,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처럼 ‘사랑’과 ‘섬김’이 내 삶의 이유이자 행복임을 깊이 깨달았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인도함을 받고 살다가 그분의 감동하심과 이끄심으로 마지막 예배를 예수님에게 드렸던 시므온 할아버지, 평생 섬김과 기도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함으로 일생일대의 예배를 주님께 드렸던 안나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들처럼 나도 예수님을 만나 그분께 드릴 한 번의 예배를 위한 리허설(rehearsal)로 평생 예배자로 살기를 소망했다.
예수님 앞에 서는 그날을 위해 평생을 살고 또 그렇게 잠들기를….

이 글을 쓰는 지금, 간암을 이겨내고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한센인을 위한 사역과 교회 개척 사역을 하시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선교사님의 고백이 내 눈시울을 적셨던 때가 생각난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쓰시는 더러운 걸레가 되고 싶습니다.”

자신이 깨끗하기보다는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자신을 드려 쓰일 수만 있다면 걸레라도 좋다던 그 마음을 닮고 싶다.
<깨어진 그릇>김태훈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