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반대말은 ‘두려움’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리고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부분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계획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 사람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물러가는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하시는 통제권이 우리 주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통제하시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 한마디면 만물이 그분께 순종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도 여전히 두려워했습니다. 눈앞에 닥쳐오는 형, 에서의 공격을 통제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브니엘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는 그 시간,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주님께 축복을 약속받고,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렇게 두려워했던 형, 에서 앞에 자기 혼자서 달려 나갈 수 있을 만큼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 33:3).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브니엘의 시간’으로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의 확신을 달라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는 그 시간,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시기까지, 주님을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전심으로 매달리는 그 시간을 통과해서 온 세상의 주권자 되시는 주님을 모신 사람답게 믿음으로 담대하게 뛰어나가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매일가정예배, 박지훈

† 말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태복음 7: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 디모데후서 1:7

† 기도
주님. 두렵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더욱 나아갑니다. 두려움을 예수이름으로 끊어내며, 제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딤후1:7)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잡고 있어야하지?’ 하며 두려움을 예수이름으로 끊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마음을 드리며, 지켜달라고 충분히 기도하자. 정말 상황을 초월한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조금 기도하고 안된다고 낙담 마세요. 그 일에 합당한 기도의 분량이 찰 때까지, 얼어붙은 마음이 녹을 때까지, 말씀과 기도로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세요. 좋으신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나, 있는 모습 그대로 결코 내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회복시키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