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매일의 창조 후기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감탄이었다. 그러나 여섯째 날은 더 특별한 형용사를 붙이신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다른 날과 구별되는 더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습 3:17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은 ‘츤데레 사랑’이다. 겉으로는 말없이, 마치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 깊이 사랑하고 계신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를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런 나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면 나의 눈을 하나님 눈으로 바꿔야 한다. 좋은 눈과 좋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보시고 하나님은 심히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창조의 질서대로 진행하셨다. 하나님은 사람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들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이 창조의 질서 가운데 가장 위에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스리시고 사람을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 원리를 통해 하나님은 피조물 전체를 다스리신다. 이것이 바로 창조 질서다.

가장 완전한 상태는 우주 만물이 이 질서대로, 창조의 원형대로 보존된 상태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진리가 깨어지면 불법이 되고 죄가 된다. 깨어진다는 것은 ‘타락’을 말한다. 타락하게 되면 이 상태가 거꾸로 된다. 만물이 인간을 다스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것이 타락한 상태이자 죄이며 불완전한 비진리의 상태이다.

만물 중에 가장 세력이 강한 돈을 생각해보자. 사람이 돈에 지배를 당한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돈 때문에 주일에 장사도 하고 일도 한다.

인간이 돈을 다스려야 되는데 돈에 다스림을 받는다. 주인이 종에게 다스림을 받는 격이다. 사람이 만물의 주인임에도 거꾸로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다스리려고 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조종한다. 만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지배하려는 상태가 바로 타락한 상태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회복의 때가 온다. 모든 피조물과 인간이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나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존재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내 존재 가치가 가장 만족함을 느끼게 된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사 43:7

이것을 모를 때 오로지 세상에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학위를 따고, 돈을 많이 벌고, 자식을 잘 키워서 내 존재 가치를 느끼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잠깐 동안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일 뿐이다. 조금 지나면 다시 존재 의미가 상실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 존재 의미가 채워지지 않게끔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나는 가장 기쁘고 가장 만족하게 된다. 존재 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시계는 시계를 만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맞는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수작업으로 시계를 만든 이유는 시간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즉, 주인을 위해서다. 시계를 위해서 시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시계는 주인에게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주인의 기쁨이 된다. 그래서 시계의 존재 목적은 시계를 만든 주인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시계가 주인의 손목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주인 몰래 탈출했다고 생각해보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존재 의미가 없다. 시계는 만든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줄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송충이가 있다. 송충이는 소나무 숲에서 솔잎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비가 오니 추울까봐 송충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빵을 주고 커피도 주면서 따뜻한 방에 재운다면 어떻게 될까? 송충이는 죽고 만다. 이것은 송충이의 창조 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단지 삼시 세끼 밥 먹고 사는 것만으로 존재의미가 있는가? 아니다.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만으로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람의 존재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를 만든 주인의 기쁨이 되고 주인에게 영광을 돌릴 때 존재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창조 원리가 그 피조물에게는 가장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이렇게 살면 행복할 텐데’ 하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철학이나 자기 비전에 몰입하다보면 불행하게 된다.

돈이 많은 부자가 자살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돈으로만 살 수 없도록 창조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기록해보자.

– 하마성경(창세기), 정은수

† 말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 민수기 6장 24~26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요한복음 15장 9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로마서 14장 7, 8절

† 기도
나를 기뻐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구하며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을 지으시고 기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해보세요.

 

제대로 작정한 용서와 사랑 [레위기 5강] 한창수목사 – 갓피플 아침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