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들은 할 일이 매우 많을 수는 있지만, 수도원의 일상에서 급하게 시간에 쫓기는 ‘분주함’은 없다. 그들의 일상에는 적절한 관점을 유지하는 균형이 있다. 소유물, 자아, 일, 그 밖의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우상이 되기 쉽다. 수도생활의 균형은 이런 우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나가는 데 필요하다.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오푸스 데이(Opus Dei. 하나님의 일)를 중심으로 그런 시각과 균형을 키운다. 오푸스 데이는 하루 일상의 정해진 시간에 간간이 끼워 넣은 기도 시간을 뜻한다(그래서 이를 ‘정해진 시간마다 드리는 예배’[liturgy of hours] 혹은 ‘일상의 계획’[Horarium]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모든 ‘기도회’의 중심인 시편 낭송도 포함된다.

원래 ‘정해진 시간마다 드리는 예배’는 하루 여덟 차례의 기도와 관계가 있었다(이 여덟이라는 숫자는 시편 119편에서 유래했는데, 62절에 나오는 “밤중에” 일어나는 것과 164절에 나오는 “하루 일곱 번씩”을 결합한 것이다).

이 여덟 차례의 기도는 철야기도, 새벽기도, 찬양(아침기도), 오전 9시 기도, 정오 기도, 오후 3시 기도, 저녁기도, 취침 전 기도다. 다른 수도회보다 더 엄격한 시토 수도회(혹은 몇몇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경우)는 새벽 3시 30분쯤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여덟 차례의 성무(聖務)를 계속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는 수도사들은 밤 9시 30분에 잠자리에 든다.

그보다 덜 엄격한 현대의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보통 하루 네 차례의 기도 시간을 지키는데, 아침 6시경에 드리는 아침기도를 시작으로 저녁식사 후에 드리는 취침 전 기도로 끝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드린다. 만약에 하루 몇 차례씩 기도하지 않는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명령을 따르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정해진 시간마다 의도적으로 기도로 돌아가는 삶의 요점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영적인 삶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마음가짐이다.

끼니를 챙겨 먹는 습관적인 시간처럼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그날에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거기에 ‘점심시간’을 써넣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 중 다양한 시간에 음식을 먹어 치우는 것에 온통 몰두한다.

어떤 사람은 균형 잡힌 식단을 하루 여섯 차례 소량씩 먹으라고 충고한다(수도사들처럼 하루 여덟 번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개념이다). 어쨌거나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에게 제2의 천성이 된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발걸음을 멈추고 하루 몇 차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기도가 스며든다.

콜룸바 스튜어트는 이 요점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에서 볼 수 있는 그의 가장 기본적인 통찰력은 일상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 베네딕트는 그리스도께 주의를 기울이는 몇 가지 훈련들, 곧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훈련을 날마다 일과에 짜 넣도록 가르치고자 했다.

이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면 매우 효율적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수도원에서 지낼 때 어떤 프로젝트(식탐을 주제로 한 초기 수도사들의 저작 연구 같은)를 작업하다 보면 공동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특히 한창 연구에 몰입하거나 논문을 써 내려가는 바로 그 순간에 벨이 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벨 소리는 공동의 기도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성가대석으로 가서 앉아야 할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린다. 그럴 때면 나는 연구나 논문 작성을 계속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펜을 내려놓거나 책을 덮고 예배당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왜냐하면 베네딕트가 강력하게 주장한 대로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일보다 더 좋아하면 안 되기”(베네딕트 규칙서 제43장 3절) 때문이다(베네딕트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시간 엄수를 매우 강조한다. 지각한 수도사는 수도원장이 그만 일어나 성가대석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허락할 때까지 수도원장 앞에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요구한다[베네딕트 규칙서 제44장 1-3절 참고].

나는 지금까지 수도원을 다니면서 그런 자세를 취하는 수도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수도사들은 보통 모임에 늦는 법이 없다. 언젠가 나도 습관적으로 강의에 늦는 학생들에게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는 벌을 주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을 고쳐먹고 실천하지는 않았다).

수도생활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근로자들도 수도사들이 기도 시간을 가지려고 일상의 행보를 멈출 때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사실, 베네딕트회의 한 수도사는 《Take Five》(5분을 내라)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하여 개인이나 소그룹이 낮에 실천할 수 있는 5분 기도 자료 시리즈를 제공했다. 요점은, 평일 내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반복하면 자신의 일상의 일이 전적으로 무엇과 관계되어 있으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떠올리며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일(work)은 인생이 단지 기도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이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 정권 동안에 자신의 지하 신학교(수도원을 닮은 작은 공동체)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관점이다.

기도와 일은 다른 것이다. 일이 기도를 방해하면 안 되지만 또한 기도가 일을 방해해도 안 된다. 6일 동안 일하고 안식일에 쉬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날을 일과 기도로 뚜렷하게 표시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 기도와 일이 제각기 당연히 받아야 할 자기 몫을 받을 때 그 두 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하루의 노동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고 기도가 없는 일은 일이 아니다.

이렇게 기도와 일의 균형을 잡으면 교만에서 나온 다양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일례로, 기도와 일을 번갈아 하는 생활 리듬은 보통 과로를 자축(自祝)의 수단으로 여기는 우리의 성향을 줄여준다.

누군가가 자기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지루하고 장황하게 설명할 때 우리는 모두 “당신은 당신이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더…”라고 맞받아치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 우리는 경쟁이 없던 곳에 경쟁을 만들어내고 거만한 태도로 남보다 유리한 위치나 지위를 차지한다.

또한 하루를 살면서 간간이 기도하거나 시편을 읽으려고 ‘5분을 낸다’면,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나의 일을 더 신뢰하고 합리화하려는 시도를 물리칠 수 있다.

사실, 수도원의 성무일과가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 40:13. 베네딕트 규칙서 제18장 1절 인용)라는 시편 기자의 말로 시작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일이 우리 삶의 타당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열성적으로 활동하지 않아도 지구는 여전히 회전축을 중심으로 계속 자전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전히 통치하실 것이다.

–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 훈련, 데니스 오크홈

† 말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 사무엘상 12장 23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에베소서 6장 18절

† 기도
분주한 일상의 발걸음을 멈추고 정해진 시간에 하는 기도를 통해 선한 영향력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기도를 하는 거룩한 영적 습관으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기도가 스며들어 선한 영향력이 흘러가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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