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수도사들에게는 베네딕트가 살았던 시대보다 사적인 공간이 더 많다. 동시에 오늘의 수도사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대중매체, 전화, 전자 기기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현대의 수도원은 우리 학교 학생 브렌트가 체험한 대로, 수도원 울타리 밖의 세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우리는 언제나 주변 세상을 소음으로 가득 채운다. 심지어 성찬식도 소리로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생각해보는 것조차 너무 부담스럽게 여긴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받으러 앞으로 나가자마자, 혹은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자마자 피아노나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고,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고 있는 자신의 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우리가 주변 세상을 소음으로 가득 채우는 이유는 침묵 자체가 두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정말로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러시아정교회 대주교 안토니 블룸(Anthony Bloom)의 도움으로, 우리가 왜 침묵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했다. 그는 《기도의 체험》(Beginning to Pray)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조용히 방에 앉으라. “나는 지금 나 자신과 함께 있어”라고 말하고 자신과 함께 있으라. 아마 놀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점 한 가지를 가르친다. 우리가 10분 동안 자신과 단둘이 있고 난 뒤에 그렇게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와 10분 동안 단둘이 있고 난 뒤에 똑같이 지루함을 느끼리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게 한다.

왜 우리는 10분 동안 자신과 단둘이 있고 난 뒤에 지루함을 느낄까? 생각, 감정, 생활을 위한 양식으로 자신에게 줄 것을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 우리는 안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사는 적이 거의 없고 대신에 외적인 자극과 흥분에 반응한다는 점을 매우 빨리 발견할 것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반사작용과 반응으로 살아간다.

… 우리는 완전히 텅텅 비어있기 때문에 자기 내면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을 바깥쪽에서 양식을 공급받는 삶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익숙하고 그 일들이 강제로 요구하는 일들을 한다. 우리가 단순하게 우리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깊이와 풍성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로 많다.

소음은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게 숨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는 태도를 막는다. 내가 처음으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수련을 끝마쳤을 때였다. 시시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외부 손님을 담당하는 가이 신부가 내게 보온병을 갖고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시 나는 엄청나게 추운 다코타주의 겨울날에 네 시간가량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가이 신부는 내가 곧 떠나야 할 그 여행에 세심하게 마음을 써서, 내가 집으로 가는 길에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실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내가 가이 신부에게 보온병을 좀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고 또 내 자동차에 보온병이 굴러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이 신부는 만약에 그때의 상황이 갈릴리 가나 지방에서 열린 결혼식이었다면, 내가 예수님께 물을 진한 블랙커피로 바꾸어달라고 구했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가이 신부는 내가 황량한 다코타주의 고속도로를 타고 얼마간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의식할 그 욕구의 소리에 이미 귀 기울이고 있었다.

듣는 법을 배우면 주변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주목할 수 있고 또 형제자매들의 필요, 곧 그들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필요한 것들에 주목할 수 있다. 성찬식의 침묵은 그것을 먹고 마시는 행위 저변에 있는 실체에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성찬식에서 체험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의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베네딕트회 영성의 한 가지 특징이다. 아마 우리는 그런 베네딕트회의 영성이 일상생활에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은 밀폐된 구획들로 나눌 수 없다.
만약에 그렇게 나눌 수 있다면, 예를 들어, 기도하는 행위와 가계부의 수입 지출을 맞추는 행위는 전혀 무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활동에 임하여 계신다. 현실의 모든 상황에 정말로 임하시고 심지어 가계부에 기록된 현실의 모든 상황에도 임하여 계신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 발걸음을 멈추어 조용히 기도(Daily Office)에 몰두하거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영양분을 공급받으면 인생의 모든 상황에 임하여 계시는 하나님께 다시 집중하고 초점을 맞출 수 있다.

–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훈련, 데니스 오크홈

† 말씀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 시편 48장 14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 2절

† 기도
제 주변의 소음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며 주목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은혜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의 주변의 소음을 줄이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