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과 신앙이 상반되지 않는다고 본다. 하나님은 이 둘을 아우르는 크신 분이기에 상담도 그분의 지혜로 사용하신다. 신앙인으로서는 당연히 신앙이 더 중요하지만, 정신과 전문의로서는 이 둘을 조화롭게 활용할 때 환자 치유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와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를 출간한 데 이어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를 펴냈다. 앞의 두 책을 내고는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원장님은 상처 잘 받으세요?”

나는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상처를 잘 안 받으면 이런 책을 쓰지도 못했을 거예요.”

이번에도 비슷한 질문이 돌아왔다.

“원장님도 예민하세요?”

나는 또 대답했다.

“예민하고 공허감을 잘 느끼기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예민함은 선물이에요.”

예민함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특징은 호기심이 많고 통찰력이 있으며 세심하게 관찰하고 의도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또 감각에 민감하고 온도, 압력의 변화, 공간의 에너지를 더 섬세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그래서 예민함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며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그만의 능력이 될 수 있다.

사실 세 번째 책은 ‘상처받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기’를 주제로 쓰고 싶었다.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의 다음 성장 단계가 상처를 받아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민함’을 먼저 다루게 하신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는구나. 때로 내 예민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성령님이 임하셔서 치유하실 때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또 상처도 감내할 수 있는 거구나.’

예민함을 주제로 강의하고 글을 쓰면서 자기 비하와 자책, 죄책감에 시달리는 크리스천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거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기를 공격한다.

‘나는 너무 한심해’, ‘이런 내가 무슨 신앙인이야’, ‘나만 참으면 모두 평화로운데…’, ‘이건 내 십자가야’, ‘크리스천이 이런 것 하나 못 견디면…’, ‘이렇게 한심한 내가 교회에 다녀봤자지. 무슨 성경공부를 해’ 등의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꼭 해주는 말이 있다.

“당신이 예민하고 잘못된 게 아니라, 때로는 상황과 상대가 당신을 힘들게 한 것일 수 있어요.”

혹 새벽에 외로워서 몸부림쳐 본 적 있는가? 운전하다가 갑자기 운전대를 치면서 엉엉 울어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그럴 때 사무치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토로할 만한 상대가 있는가? 언제고 연락해서 내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거나 옆에서 자는 배우자라도 깨워 그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군중 속에서도 외롭고 공허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특히 공허감을 많이 느낀다면 타인에게 상처를 반복하여 받아서 피해 의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지 모른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

그런데 정말 날 생각해서 하는 말일까? 나는 이런 말을 일삼는 친구를 ‘프레너미’(frienemy)라고 부른다. 친구 ‘friend’와 적 ‘enemy’의 합성어로, 내 행복을 빌어주는 진짜 친구인지 아니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머물지만 시기와 질투를 남발하는 적인지 알 수 없는 존재를 말한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즐겁고 충전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이 쭉 빠지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 들거나 어떤 모임에 갔다가 원인 모를 불쾌감을 안고 집에 돌아올 때가 있다. 관계 속에서 자꾸 우위를 차지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움츠러들며 예민해지고 그 모임에 다신 안 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문제다. 만일 교회 모임이 그렇다면 ‘내가 영성이 부족해서 이렇구나’, ‘내 신앙에 문제가 있구나’, ‘사람 하나를 품지 못하면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나’라며 깊은 자책에 빠진다.

크리스천뿐 아니라 정신과를 찾는 이들 중 대부분이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부부 관계, 부모 자녀 관계, 교회 인간관계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문제가 발생한다. 또 일방적으로 감정을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 속에서 주로 피해자가 상담실을 찾는다. 예를 들어 남편이 주사와 폭언을 일삼는 경우 상담실에 오는 건 대부분 피해자인 그의 아내다.

그렇다면 나를 괴롭히는 ‘감정착취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 관계와 상황에 놓여있다면 자책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하고 살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심리적 거리를 두자. 마스크를 써서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듯 상대를 멀리하며 나를 보호하고, 그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내 마음도 쉴 곳이 필요해요, 유은정

† 말씀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시편 131장 2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장 28절

† 기도
주님, 나는 왜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고 나 자신을 다그치며 좌절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저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잘하고 있다고 사랑의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주님께 위로받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잘하고 있다고 자기자신에게 위로와 따뜻한 말을 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아껴주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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