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을 떠나 우리만의 보금자리로 이사를 나오던 날이 생각난다. 부산에서 수원까지 가야 해서 저녁에 짐을 싸고 다음 날 아침에 수원에서 짐을 푸는 일정이었다. 살림이라고 해봐야 혼수로 해 간 장롱이 가장 큰 짐이었고, 서랍장 두어 개, 책상과 책장이 전부였다. 트럭 한 대에 다 실어 보내고 친정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부산을 떠났다.

남편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말에 수원과 부산을 오가는 고단한 생활을 끝내고 안양에 있는 한 개척교회에 교육전도사로 부임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우리가 얻은 집은 1년 동안 살고 우리가 떠나자 곧 재개발이 된, 지은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였다. 아파트에 연탄보일러가 들어가는 시절에 지은 것이었다. 대부분 기름보일러로 교체했지만 여전히 연탄보일러를 쓰는 집들이 남아있어서 곳곳에 연탄재가 쌓여있었다. 15평짜리 작은 집의 주인은 세입자의 잦은 이사로 들어올 때마다 도배를 새롭게 해주는 걸 짜증을 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부엌 위쪽 도배지는 늘어지고 찢어져서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어 곰팡이가 시커멓게 피어있었다. 문을 열어놓으면 너무나 심란해서 남편이 페인트를 사다가 칠을 했다. 나무틀이 휘어져 겨우 창을 열 수 있는 창문으로 햇살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 창문에 오렌지색 커튼을 치고 햇빛을 오렌지색 조명으로 바꿔놓고 갓 돌 지난 큰아이와 낮잠을 실컷 자던, 내 생애 가장 마음 편한 날들이었다.

낮에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그네를 밀어주고 시소를 태워주고 미끄럼틀 옆에 서서 내려오는 걸 지켜보며 박수 쳐주고 세발자전거를 태우고 온 아파트 단지를 밀어주면서 다녔다. 아파트 입구에는 오래된 시장이 있었다. 수십 년 장사를 같이 했을 시장 할머니들은 나란히 앉아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온갖 채소 손질을 다 해놓고 팔았다. 내가 따로 할 게 없었다.

그 예쁜 채소들을 사다가 찬물에 담가두어 소생하듯 싱싱해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라도 사서 볶고 있으면 남편이 왔다. 젊고 재밌고 똑똑하고 유능한 남편이었다. 아빠가 몰고 들어오는 바람을 종일 기다린 아들은 두 손을 들고 달려가며 그를 반겼다.

낡고 좁은 집에 살면서 신학생이자 교육전도사인 남편이 벌어오는 수십만 원으로 살았지만 내 가슴은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돈과 명예를 지푸라기로 여기고 복음과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위해 삶을 바친 우리의 길이 자랑스러웠다.

집이 뭐 대수인가. 그도 나도 아이도 너무나 특별해서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 세 식구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은 그 허름한 집으로 이틀이 멀다 하고 손님을 초대했다.

이 시절 내 마음은 부자였다. 어딜 가서 누굴 만나도 기가 안 죽었다. 오히려 서슬이 시퍼랬다. 교회에 가면 세칭 또래 서울내기들이 가득했고, 잘 배우고 세련돼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그들일 뿐, 나일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나로서 특별했다.

가장 특별한 건 내 아들이었다.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즐거운 고민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장차 이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 자부심이 넘치는 만큼 고민은 깊었고, 꿈을 따라 열정을 따라 그리고 기도를 따라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성경 먹이는 엄마》 출간 이후 지난 16년을 돌아보는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어떻게 이렇게 걸어올 수 있었을까,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뭐였을까. 몇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심연에서부터 항상 갈망하던 건 ‘영원까지 가는 것’이었다. 영원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내게 죽음이 가까웠던 것처럼 영원이라는 명제도 늘 가까이에 있었다. 영원한 것, 영원까지 가는 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사라지고 말 것에 삶을 걸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영원까지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존재였다. 그들 안에는 영원이 있었다. 그 영원에 나 자신을 던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에 투자하며 사랑하려고 살 것이다. 아가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 아 5:8

내가 병이 나면 그건 순전히 사랑하다가 병이 난 것일 테다. 사랑해보니 알겠다. 이건 정말 못 할 짓이다.

사랑의 왕이신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배워 겨우 흉내만 내는 데도 이렇게 어렵고 힘이 든다. 그러나 두렵진 않다. 병도 죽음도. 사랑할 수 없는 자가 사랑해야 했던 내 운명. 할 수 없는 것을 그렇게 열심히 하였으니 병들 수밖에, 죽을 수밖에.

그래도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아직 사랑함이 모자라 병이 오지 않았다면, 센 머리로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쓰게 된다면, 그렇다면 제목은 하나밖에 없다.

사랑하다가 죽다.

– 사랑하려고 산다, 최에스더

†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장 34, 35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13장 3절

† 기도
사랑의 하나님, 부족한 저에게 날마다 사랑과 은혜를 부어 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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