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도록 나의 외출 시간은 해가 떠있는 동안이었다. 해가 저물어 가면 귀가를 서둘러야 했다. 강의를 다 마치고 동아리 모임도 끝내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진짜로 놀아보려고 할 때 나는 이미 버스를 타고 있었다. 친구들은 서둘러 집에 가려는 나를 이해 못 한다는 표정으로 봤지만 내게 타협은 없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엄마에게 그렇게 길들여진 탓이었다.

해가 진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돌아다니는 줄 알고 컸다. 어둑어둑해지면 심부름도 하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 놀다가도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될까 두려워하는 엄마의 걱정은 해가 떨어짐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엄마는 해가 있는 동안에는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자랐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러 혼자 버스를 40분 정도 타고 가서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을 두 번이나 건너 바닷가 횟집들이 장사를 시작하려고 느지막이 문을 여는 길목을 길게 지나 피아노 선생님이 사는 아파트를 오갔다. 지금 이 얘기를 하면 엄마는 매우 놀란다. 내가 그런 곳에 너를 피아노 배우라고 혼자 보냈다고? 하면서.

엄마의 이런 허술한 구석마저 없었다면 정말 숨이 막혔으리라. 그러나 엄마가 풀어주는 방면은 나로서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엄마가 꽉 쥐고 벌벌 떠는 방면에서는 엄마의 두려움의 강도가 너무 세서 나는 기가 질렸다.

어떤 경로로 엄마의 내면에 그런 걱정 DNA가 심겼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내가 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했다. 그저 집 안에 가만히 있기를 원했다. 어려서는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 스스로 알아서 많은 걸 포기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엄마는 나에 대한 모든 걱정, 즉 관심을 끊고 걱정 덩어리 딸을 드디어 치웠다.

엄마가 되어 이 지긋지긋한 걱정 DNA가 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가 내 눈앞에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집안에서만 키우기에 역부족인 에너지 덩어리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만 밖에 내보내기가 두려워 늘 따라다녔다.

큰아들이 여덟 살이 되자 혼자 뛰어나가 놀고 싶어 했다. 네 살 아래 동생과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온종일 놀다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둘이서만 타게 하는 데도 내게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중간에 몇 층에 서는지, 잘 내려서 가는지 뒤에서 늘 확인했다. 나 귀찮다고 아이들을 집안에만 있게 하는 건 내 엄마가 했던 일이 아닌가.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라기보다 본인이 불안한 게 싫어서 나를 말렸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 자식을 나 같은 겁쟁이로 키우지 않겠다고.

내게는 극기 훈련이었다. 이건 아이들을 존중하는 좋은 방법이야, 이 아이들이 하는 작은 시도, 작은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라고 스스로를 계속 달래가며 아이들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중간에 오만가지 걱정이 달려들었다.

유괴되는 아이들, 사고 당하는 아이들이 왜 있겠나, 어디서 엉엉 울고 있으면 어떡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렇다고 놀이터에 내보내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게 하거나 내가 따라 나가야 한다면 나 역시 아이들의 시도나 도전이 불안하여 말리는 엄마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엎드려 기도했다. 눈물까지 나오는 날도 있었다. 내 아이에게 일어날 일을 막아주지 못해서 생길 수 있는 사건과 사고가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자책과 후회가 산처럼 파도처럼 몰려오기까지 했다.

이 무슨 정신병인가.

이 엄마가 덜덜덜 떨면서 저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아이들이 알까. 문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면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 소리, 킥보드를 갖다 대는 소리가 나면 정말 눈 녹듯이 걱정이 사라지고 걱정만 한 반가움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땀을 뻘뻘 흘리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젖은 머리카락을 젖히며 들어오는 어린 아들들은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였단다. 바지에 구멍이 났단다. 비둘기를 쫓아다녔단다. 개미굴을 파버렸단다.

아이들이 재잘대면서 옷을 벗는 동안 목욕탕에 더운물을 받으면서 눈물이 핑 돈다. 너무 반가워서. 너무 감사해서.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너무 귀해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얼마나 속속들이 자아 훈련이었는지.

내 안에 자리 잡은 아니 내 피에 흐르는, 제발 내게서 사라지길 원하는 그 무언가와 끝없이 싸우는 시간이었다.

열두 살 큰아들이 버스 타고 처음 미술 학원에 갈 때, 일곱 살 작은아들이 옆 동으로 피아노를 배우러 갈 때, 주차하는 동안 발레교습소로 딸들을 먼저 올려 보내놓고 나는 변함없이 떨었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조금만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 엄마 걱정에 아무것도 못 하던 나도, 걱정에 묶여 자라지 못하고 있었던 내 자아도 조금씩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의 운명.
이 운명을 안고 사는 동안
죽을 때까지 걱정을 떨치지 못하겠지.

그러나 묶여 살지는 않겠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믿고 가겠다.

내 앞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펼쳐진대도
어쩔 수 없다. 피할 도리가 없다.

그것도 받아들여야
걱정을 이기고
나와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다.

– 사랑하려고 산다, 최에스더

†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장 4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장 6, 7절

† 기도
근심과 염려가 제 마음을 파고 들 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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