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과 ‘안녕 자두야’라는 만화영화를 즐겨 본다. 난 자두 엄마를 참 좋아한다. 그녀는 안방에 자주 누워 잔다. 낮잠 자다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 장면이 너무 재밌다.

모름지기 만화영화에서 엄마란 시장을 잔뜩 봐 와서 음식 만들다가 청소하다가 간식을 들고 아이들 방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자두 엄마는 아니었다.

나도 자두 엄마처럼 낮잠을 잘 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나는 늘 자고 있다. 자는 내 주위로 아이들이 엎드려서 그림 그리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하루 한 편씩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는 시간, 아이들은 점점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TV 가까이로 간다.

오프닝 음악을 들으며 이미 잠에 빠져든 내가 실눈을 뜨고, 뒤로 물러나서 봐~ 하면 큰아이는 한두 번 엉덩이를 뒤로 밀고 마는데 작은아이는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밀고 오다가 벽에 붙어서 자고 있는 내 얼굴 위에 기저귀 찬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정신없이 영화를 보는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완벽한 시간표를 짜서 그대로 행하는 유형의 엄마요, 홈스쿨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나름 계획이라는 것도 짜놓았지만 공부를 하는 아이와 젖병을 물고 있는 아이가 함께 있는 집이어서 예기치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났고, 교회의 부름에 달려 나가야 하는 일도 불쑥불쑥 생겨서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체력이 턱없이 약하다. 늘 지쳐있는 엄마요 자주 졸고 있는 엄마다. 최소한으로 줄여놓은 일도 내 에너지로 감당하기가 벅차서 아이들이 보기에 늘 눈이 반쯤 감겨있고 집에서는 편한 옷 중에 가장 편한 옷, 즉 잠옷만 입고 모든 일을 보는 엄마다. 오죽했으면 청바지만 꺼내 입어도 아이들이 교회 가냐고 물었겠는가.

지친 엄마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피곤한 엄마 얼굴을 보며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 죄책감을 가진 아이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며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한다. 엄마의 웃음이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피곤한 인생이다. 필요 없는 에너지 낭비로 보인다.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에너지를 비축해놓아야 할 시기에 별 에너지도 없는 아이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힘을 쓰고 감정을 쓴다.

나는 아이들의 힘이 아까웠다. 그 힘은 엄마를 위해 쓰지 말고 아껴놨다가 자신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이들의 힘을 아껴주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부모 말고 누가 그것을 아껴줄 것인가.

아이들과 늘 함께 있었기에 내 시간이 따로 없었다. 피곤한 내색을 감추고 있다가 아이들이 없을 때 피로를 풀 여유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지친 얼굴을 아이들에게 보이면서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눈에 들어와서 낮잠 자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낮잠을 자는 것에 게으름이라는 이름의 죄책감이 들려는 것을 싹 걷어치웠다. 피로를 풀고 개운한 얼굴로 나와서 아이들을 볼 때 웃는 얼굴로 마주하는 게 훨씬 낫다고 단단히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잠 좀 잘게.”

아이들은 흔쾌히 허락해준다. 내 낮잠에 그들만큼 너그러운 사람은 없다.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고여준다. 어떤 날에는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순식간에 곯아떨어지려는 내 귀에, 엄마 많이 피곤하죠? 걱정 어린 목소리도 들려준다. 얼마나 행복하게 낮잠을 잤는지 모른다.

낮잠을 자려면 일을 미루어야 한다. 집안에만 있는 엄마였지만 주어진 일이 워낙 많아 다른 엄마들이 잘 하지 않는 종류의 고민을 늘 했다. 이 일을 해야 하나, 꼭 해야 하나, 저 일은 어떤가, 안 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인가,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다음에는 거절해야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도저히 내 형편에는 무리구나.

꼭 해야 할 일처럼 보이는 것도 미루거나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일에 지쳐있거나 의무감에 눌려있는 모습보다는 추려서 선택하고 버리고 포기하는 모습이 훨씬 낫다. 포기는 나쁜 것일까. 포기하는 건 지는 것일까. 매진하는 것만이 좋은 걸까.

포기를 하려면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선순위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 다 할 것인데 순위를 뭐 하러 정하는가. 포기하고 재배치하고 상황을 바꾸려는 사람에게만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매진하는지 보인다. 매진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시키고 있는지도. 과연 희생시켜도 괜찮은 것들일까.

우선순위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내가 나를 위해 살고 있는지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사는지 살펴볼 수 있다. 어느샌가 지친 나를 달래려는 내 아이처럼 자신을 돌보는 것은 뒷전인 채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볼 수 있다.

나를 위한 쉼. 쉼이 있어야 회복이 있고 회복이 있어야 힘이 생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라고 하셨다. 안식을 명하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도 쉬고 아이도 쉬고 집안이 쉴 수 있는 배짱은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은 내가 달려가는 만큼 얻을 것이요 달려가지 않으면 그만큼 손해 본다는 세상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내가 짓지 않은 집에서 내가 심지 않은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이다. 믿는 자가 쉴 수 있다. 믿는 자에게 쉼이 온다.

– 사랑하려고 산다, 최에스더

† 말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시편 55장 22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1장 28~30절

† 기도
주님,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낙심이 되고 실망이 찾아옵니다. 주님안에서 쉼을 누리며 힘과 능력을 얻어 기쁨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제 삶을 책임져주세요.

† 적용과 결단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시는 그분을 의지하며 동행함으로 힘과 능력을 얻어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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