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바라봄은 닮아감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길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과 교회를 위해 더 헌신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지 간에 가끔 침투하는 생각은,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고 칭찬하면, 겉으로는 겸양을 떨면서도 속으로는 흐뭇해하고, 나아가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심지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과 같지 못한 이들을 평가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선교 사역을 시작한 초기 10년 안팎으로는 말할 수 없이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정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을 체득했기에 그전보다는 수월하지만, 여전히 비교적 많은 수고를 한다고 말하는 타인들의 평가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위와 같은 마음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며 가끔씩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종이 최선을 다하여 주인을 섬기고 나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한 성경의 고백이 사실 가장 정확한 고백인데, 너무나도 자주 그 고백보다

“내가 이렇게 수고했으니 좀 알아봐주세요”라고 고개를 세우곤 합니다.

사탄은 우리 사역의 출발과 과정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마무리에 개입할 때가 더 많습니다. 열심히 해놓고 그 공을 입으로는 주님께 돌리지만,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그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놓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헌신한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경계할 때임을 믿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겸비하고, 더 순복하여, 도무지 사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정받고, 칭찬받고, 박수받는 것을 좋아하는 이 연약한 나를 볼 때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절감하기에 오직 선하신 주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라봄은 그분의 형상을 사모함이고, 사모함은 물들어감이고, 물들어감은 닮아감입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봄으로 결국 주님을 닮아 그분의 모습대로 되어져감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그 주님, 그 주님을 오늘도 바라봅니다.

–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길 원합니다, 임동수

† 말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1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 마가복음 12:40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잠언 16:18

† 기도
주님. 내가 높아지면 주님이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아무리 기름부음 넘치고, 능력이 많고, 많이 기도하고, 성경 읽는다해도 내가 높아지면 끝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겸손히 주님만 가리키는 화살표로 평생을 살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바리새인들은 남에게 보이고자 하여 길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주님. 혹시 제가 잘못하고 있다면 깨닫게 하소서.” 라는 다윗의 이 기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도 속을 수 있기에, 주님께 나아갑시다. 인정 받고자 하는 마음, 남과 비교하고 평가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는지 깨닫기 원합니다. 온전케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닌, 오직 주님이 아심에 기쁨되는 우리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