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데..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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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등교하는 아이의 가방은 벽돌 10개는 넣은것처럼 무겁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를 향해 갑니다. 막연히 ‘네가 제일 잘 할거다’ 라는 믿음 이전에 제일은 아니여도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고..
준비도 부족하고 하나님과 함께 해온 부족한 경험일지라도 아이에게 ‘힘내’, ‘노력해보자’, ‘열씸해 해보자’라는 말대신 오늘은 ‘괜찮아. 하나님은 너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보고 계셔.. 그러니 함께 기도할께”라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홈스쿨이 막을 내렸다.
나는 선생 노릇을 그만해도 되고 밥만 해주면 되는 엄마로 돌아왔다.
나의 홈스쿨은 처음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누군가의 표현대로 홈스테이 기능이 훨씬 많았다.

잘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의 재능을 찾아주고,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을 잘 쌓아주고 싶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며 즐겁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제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기본 지식을 갖게 하는 데만 턱없이 많은 에너지가 들었고 그것만 하고 났는데도 난 나가떨어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벅찼다. 말 그대로 시행착오만 계속되던 홈스쿨이 끝나고 아이들이 순서대로 또래 사회 속으로 들어가던 시작점의 이야기이다.

큰아들과 둘째는 대학교, 셋째는 고등학교, 막내는 중학교가 그 시작이었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환상과 기대에 차있는 엄마여서 나름 자신만만했다.

네가 제일 잘할 거다.
과연 그럴까, 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의심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볼 것을 독려했다.
준비시켜 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아이들이 각자의 학교에 들어가서 최초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거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집 아이들은 이미 전공에 대한 준비를 탄탄하게 해왔고 앞으로의 준비도 착착 하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전공에 대한 호감 하나만으로 입학을 한 게 전부였다.

출발선이 달랐다.
앞서서 뛰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라가느라, 나는 재능이 없나? 내가 이렇게 못 따라가다니, 이런 혼란 속에서 출발했다. 이건 넷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아이들이 초반에 겪는 혼란을 보면서 부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현실에서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의 최선이 다른 이들의 차선도 못 따라가는 경험을 살면서 자주 했다.
고3 첫 등교일, 겨울방학 내내 공부도 공부지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던 나는 새벽부터 준비해서 생애 제일 이른 등교를 했다.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가 제일 늦게까지 공부하리라는 다짐이었다. 학교는 과연 조용했다.

3층 교실로 올라가는데 신발장이 꽉 차있었다. 계단을 올라 유리창으로 보니 나 빼고 다 와서 조용히 공부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온 게 아니라 제일 늦게 온 것이었다.
그것도 첫날에. 열여덟 살이 되도록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교실에 앉아있는 반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실력에서가 아니라 자세에서 벌써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늘 초보 중의 초보였고, 더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수준은 보통 정도였다. 아이들은 엄마 말만 믿고 신이 났다가 또래들을 만나면 늘 기가 죽곤 했다. 다 엄마 탓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네가 제일 잘할 거라고 했으니 아이들 표정이 다들 그랬던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현실과는 다르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좀 단단한 것이 있다면, 위로를 좀 삼아보자면 자기 전공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를 불태워 한번 가보고 싶다는 확신, 이 공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길을 다시 가게 되더라도 후회 없이 지금의 이 길을 가보겠다는 확신을 높이 샀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솔직히 나는 부럽다.

나는 그 나이에 그러지 못했다. 번듯한 대학에서 번듯한 학과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모든 게 불안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준비물이 완벽했지만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게 나라면, 준비물은 거의 갖추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게 뭔지 또렷하게 아는,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 내 아이들이 정말 부럽다. 어쩌면 이 확신이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아닐까.

십 대란, 그리고 이십 대란 얼마나 젊은 나이인가. 무언가를 배우기에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이런 생각에 출발선에서 자신을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여 위축된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조금만 적응하면 금방 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한 가지 더 차별점을 찾아본다면 아이들이 가진 하나님 인식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유일한 힘이었던 부모의 연약함을 보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유일한 계획이었던 부모의 무능력을 보았다. 우리의 약함이 그분의 강하심을 볼 수 있는 은혜임을 가르쳐주면서 함께 걸어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또래보다 성숙했고 생각보다 강했다.

우리의 내면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삶의 결과보다 동기를 지켜보시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온 아이들이었다. 내면보다는 외면을, 동기보다는 결과를, 과정보다는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과는 정반대로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선하고 아름다워서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에서 이미 지친 친구들에게 기꺼이 양보하며 기꺼이 함께하는 우리 아이들의 존재는 신기할 수밖에 없다. 또래 사회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식대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모습은 분명 눈에 뜨일 것이다.

자기 색깔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아이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양보와 배려를 칭찬한다. 어리석어 보일 수 있고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은 접는다. 튀어서 걱정이라는 생각도 없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나는 걱정 안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약한 시작을 나는 응원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홈스쿨로 여기까지 왔고 이렇게밖에 준비시켜 주지 못했다. 더 치밀하고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아이들의 현재는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만났다. 그래서 여기까지밖에 못 데리고 왔다.

미래를 향한 출발선 근처에 서있는 아이들을 보며 준비시켜 주지 못했던 것에 마음 아팠던 순간도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니 그럴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이었고 그분의 섭리 안에 있는 인생이었다.
<사랑하려고 산다> 최에스더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