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장미의 가시처럼 다가올수록 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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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웃집 아이라면 지각을 하던지 대충 하더라도 잔소리 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녀에게는 왜 사사건건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만 보이는 것인지.. 자녀를 위해 기도(주님~ 바꿔주세요..)하는데 주님은 아이가 아니라 저의 바꿔야 할 부분을 보여주십니다.
부모에게 아이가 조금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루 되길 기도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상대방과 합일한다.
사랑은 포기하거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다. 감정의 종노릇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는 것이기에 상대를 풍요롭게 하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상대도 결국 주는 자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의 자질로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말했다. ‘보호’는 상대방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태도다. 상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성장하길 진정으로 바랄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의사가 환자에게 가져야 할 자세다.

‘책임’은 상대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여기는 태도다. 진료실에서 종종 배우자의 문제를 탓하기 급급한 이들을 만난다. 그래서 보통 부부상담은 두 사람이 함께 받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문제를 먼저 들여다보게 한다. 그런데 둘 중 한 사람만 성찰해도 부부는 변화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배우자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그도 책임을 느끼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가 바로 책임이다.

‘존경’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개성을 인정해주는 태도다. 흔히 존경할 만한 대상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손아랫사람이나 자녀도 존경의 대상이다. 진료실을 찾은 부모에게 자녀를 존중하고 칭찬해주라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애가 존중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하죠. 칭찬할 게 없는데 무슨 칭찬을 해요.”
부모의 기준에 자녀를 맞추려다 보면 자녀가 뭘 해도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게으르니? 왜 정리 하나 못 하니? 왜 그렇게 공부를 못 하니?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커서 뭘 할 수 있겠니?’

이런 비난은 자녀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녀는 사회에 나가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경우에도 비난보다 ‘인정’이 먼저다. 자녀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인정하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때 ‘자녀 사랑’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지식’은 상대방의 본질과 핵심을 파고드는 태도다. 상대의 말과 행동, 문제의 이면에 어떤 본질이 있는지, 어떤 마음이 숨어있는지,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거다. 자녀를 바라볼 때도 이렇게 생각해보라.
‘쟤가 저렇게 늦게 일어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 공동체에서도 ‘그 형제(자매)가 상처 주는 말을 잘하는 이유는 그에게도 상처가 있어서 아닐까’라고 생각을 달리해볼 수 있다. 사랑은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마음도 쉴 곳이 필요해요>유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