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숙하고 시행착오가 빤히 보이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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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는 어려움보다 내 아이가 겪는 어려움이 백만배는 더 힘들고 어렵게 보입니다. 할수만 있다가 아이 앞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평탄한 길로만 가게 해주고 싶지만 그게 정답이 아닌것을 알기에 오늘도 이렇게 기도해봅니다.
‘주님 나의 아이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지라도 좌절하고 상황이나 다른사람 탓을 하기보다 그 어려움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실패할지라도 배워야 할것을 배우는 시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아이들이 해보겠다고 하는 걸 말리지 않는다.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는 걱정거리 때문에 내가 하고 싶다는 걸 다 뜯어말린 엄마 밑에서 자란 탓이 크다. 나를 키운 양육 철학의 정반대에 가있고 싶은 반발심에 나의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예스를 외치고 보는 엄마가 되었다.

세뇌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단단히 작심했음에도 걱정이 먼저 깨어난다. 말리고 싶은 잔소리가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내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들부들 참으면서 아이들이 해보겠다고 하는 것을 선뜻 허락해준다.

우리 집 아이들도 똑같다. 아직 어리석고 판단이 미숙하다. 시행착오가 뻔히 보인다.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한다. 인생에서 배울 것은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생이란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철저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했더라도 생각지 못한 변수를 만나 다 허사가 될 때도 있다는 것,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자신의 꿈과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를 경험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며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겸손하게 살아가기를 배우기 바란다.

아이들이 해보겠다는 것. 그들의 생각과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허락한다.
나의 걱정과 불안은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꼭꼭 감춘다.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도전을 향해 가는 아이의 몫이 아니다. 내 몫을 안고 기도한다. 내 눈에는 보이는 위험 요소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무조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이나 들을 기도이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한다. 이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계획을 믿고 그것에 기대어 이 일을 통해 아이가 배울 것을 위해 기도한다. 결국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아이에게 허락을 해주면서,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해라, 중간에 포기하지 마라,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것도 날아오르려는 아이의 발에 그만큼의 돌을 매다는 것 같아서다. 중간에 포기할 만하면 포기도 하는 것이다. 포기하면 어떤가. 날갯짓이 벅찰 때는 다시 내려와서 힘을 키우든가, 날개를 살펴봐야지.

허황된 꿈과 엉성한 계획, 어리석은 시도와 불필요한 준비물. 이것이 몰고 올 참사에 가까운 실패와 실망을 귀하게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장래의 직업을 결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실수로 최대한의 완성품을 만들라는, 그것도 최상품으로 만들라는 압박은 하고 싶지 않다. 자신이 겪고 경험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 인생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본인이다.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적당히 도와주고 다시 자기 인생의 주인공 자리에 두려워하지 말고 서기를 격려하고 뒤로 빠져나와야 한다.
그의 허술한 발걸음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나는 믿기에 배짱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서 두려움 없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응원한다. 뜨겁게 열렬히 사랑을 다해.
<사랑하려고 산다> 최에스더 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