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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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다 될 수 있을것 같을 때에는 남들에게 교만해보이지 않을 정도의 여유로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힘든일을 앞에서보니 다른 사람들 앞이 아닌 주님앞에서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과 그 눈물을 닦아주시며 안아주시는 주님의 위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습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노가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에 눈이 뜨였다.
사탄의 수가 보였다.
이를 통해 나를 넘어뜨리려는 수가 보일 때는 “네 계략이 다 드러났으니, 예수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갈지어다!”라고 대적하며 물리쳤다.

얼마 전에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버겁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계속 짜증을 내게 되고
마음속에서 악한 생각들이 올라와서 참는 것이 힘이 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큰방에 주저앉아 선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아멘!”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가라!
내 안에 분노의 영, 미움의 영아! 예수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가라!”

“주님, 한 알의 밀알로 이 가정에서 제가 죽어지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살아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있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어떻게 보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는 것은 결코 고상해 보이거나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사탄에게 칼 한 번 빼어보지 못하고 속아서 당하기만 했던 그 많은 시간 속에서 울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며 이제는 칼을 빼서 싸워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용서를 받고 또 받고 보니 내 사랑하는 예수님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싫어졌다.

엄마가 그렇게 울면서 소리치면서 기도가 끝나고 눈물을 닦고 있으니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뽀뽀해주며 “사랑스러운 우리 로이, 얼마나 이쁜지…”, “우리 이쁜이 예이야, 사랑해”, “우리 제이, 사랑해!” 하고 얼굴을 비비고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장난감으로 놀이를 했다.

혹시 나와 같은 ‘부끄러운 엄마’의 모습으로 인해 울고 있는 엄마들이 있는가?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은 자신의 모습으로 신음하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우는 눈물은 힘이 있다.

그것은 내 안의 모든 악함을 씻어내는 눈물이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항복의 눈물이요, 주님께 해답이 있다는 인정의 눈물이다.

이 땅의 모든 바보 엄마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자신의 무능력과 밑바닥의 모습으로 눈물이 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울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울음을 능력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5,16
<울보엄마>권미나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