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현지에 가서야 알게 된 것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광야 생활을 했던 엔게디 광야가 바로 사해(Dead Sea) 근처에 인접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해는 호면이 지표에서 가장 낮은 호수입니다. 그래서 엔게디 광야 지역에서 내려다보면 사해가 한참 밑으로 펼쳐지는데, 너무나 넓고 아름다워서 장엄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사방이 산도 없이 탁 트인 지형이라 조용하고 은은하게 불어오는 사막바람과 함께 온 천하가 가슴에 안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절경에 말을 잃고 서 있는 제 옆에서 가이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다윗이 엔게디 광야 생활하면서 어떻게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 57:5) 같은 장엄한 묵상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런 곳에 서서 사해를 비롯한 이 장엄한 장관을 내려다보며 예배하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설교자인 저부터 그동안 광야를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광야는 무조건 힘들고 나쁜 곳,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통과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지, 광야 여정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보배로운 영적 경험과 교훈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광야에서 생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고, 광야 생활을 통해 오히려 축복의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광야를 거쳐서 왕이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팔레스타인의 광야는 넓게 펼쳐진 광활한 사막 지대입니다. 매우 건조하고 뜨거워 때로는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합니다.

성지순례를 다닐 때 낮에는 밖에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더운데 또 밤에는 얼음장처럼 춥습니다. 발이 모래에 푹푹 빠져서 몇 시간만 걸어도 목이 마르고 힘이 빠져서 탈진됩니다. 그런데다가 모래 폭풍이라도 조금 불면, 어디가 남이고 북인지 방향 잡기가 어렵습니다.

나무도, 풀도, 채소밭도, 과수원도, 잡아먹을 물고기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물을 마시려면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는데 당최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드문드문 숨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뱀과 전갈 같은 온갖 무서운 것들이 가득합니다. 한마디로 광야는 목마르고 배고프고 지치고 외롭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거칠고 힘든 땅이 광야인데, 놀랍게도 구약성경 대부분이 광야를 무대로 전개되었고,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빚어진 곳 또한 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광야는 엄청난 영적 의미가 있는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이면 하나님께서 더 편하게 살게 해주시고, 복 받게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8장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간 광야 길을 걷게 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광야 길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야를 지나가게끔 주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4백 년 넘게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출애굽 했으면 바로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 주시지 왜 굳이 광야라는 힘든 중간 과정을 거치게 하셨을까요?

광야가 지름길이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달 만에 통과할 수 있는 길을무려 40년이나 빙글빙글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로 몰아넣으신 것은 그들을 꼭 벌하시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으로 연단하여 준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30년 넘게 목회해오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사실 하나는 푸른 초원을 평안히 걸어갈 때는 성도의 신앙이 잘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소리 없이 타락하고 퇴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놀라고 주위 사람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영적 도약을 하는 때는 대부분 너무나 힘든 광야를 지날 때였습니다. 백이면 백, 예외가 없었습니다.

물론 광야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광야의 아픔을 믿음의 도약으로 연결하였습니다. 가장 뜨거운 기도, 가장 은혜로운 예배, 가장 감동적인 헌신을 하는 성도는 다 광야의 풀무불 속에서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특별한 영성훈련학교입니다. 그러므로 광야가 힘들다고 무조건 빨리 통과할 것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고통을 낭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광야는 빨리 통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광야의 여정 속에 담긴 영적 레슨을 제대로 배우고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광야 학교를 통해 약속의 땅을 정복할 수 있는 위대한 챔피언이 될 것입니다. 광야에 담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해한다면, 그래서 영의 눈으로 광야를 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는 아름답다! 뷰티풀 광야!” 

– 뷰티풀 광야, 한홍

†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신명기 8장 2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 6절

† 기도
아버지. 힘든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함께하여 주십시오. 빨리 통과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땅을 통해 성장하게 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숨겨두신 보물이 가득한 그곳 광야에서 강해지고 깊어지게 하소서. 은혜로 충만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광야의 시련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면서, 겸손하게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간절하고 목마르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가는 겁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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