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9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3 . 우리는 생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동물의 세계도 당연히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지만, 아무리 강한 동물이라도 자기 배만 부르면 더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한 동물들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다. 생존뿐만 아니라 번성할 수도 있다.

4.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그렇질 못하다. 인간은 먹고 배불러도 사냥을 그치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계속 사냥하다 보니 약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남을 짓밟고 찌르고 빼앗고 죽이는 일이 사람보다 더 심한 동물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5.강한 자가 되어서 내가 죽지 않고 남을 죽이며 살면, 잘 살까?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예전에 유행했던 식인종 시리즈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식인종 아이가 부모를 잡아먹고는 “나는 고아다” 하며 울었다는 얘기다. 이 우스갯소리에 굉장히 중요한 철학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잡아먹으며 산다. 잡아먹으면 잘살 거라고 생각했고 행복할 줄 알았지만, 강한 자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6.약한 자는 불안에 떨며 죽게 되지만, 강한 자는 늘 고아가 되어 외롭다. 그러니 강자가 되어도 행복하지 못하고 약자가 되어도 행복하지 못한 세상을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7.서로 불신하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경쟁하고 상처 주고 빼앗고 찌르고 불안해하면서 외롭게 사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이다. 오히려 동물의 세계에는 평화가 있는데 인간의 세계에는 평화가 없다. 왜 그럴까? 욕심 때문이다.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죽이다 죽이다 하나님까지 죽인다.

8.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죽임당할 위기에 처하셨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였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하면, 이해는 간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손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기들은 선민이라고 자랑하며 다른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는 이방인이라고 개 취급하던 그 잘난 유대인들에게 죽임당하셨다.

9.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왜 죽였을까? 욕심 때문이다. 유대인 중에서도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같은 교권주의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예수님이 자꾸 건드시니까 그걸 방어하다가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욕심 때문에 혼자만 잘먹고 잘살겠다고사람 죽이는 일에 습관 되어 있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까지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10.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욕심부리면서 그렇게 살벌하게 사는 건 이해라도 된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가만히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한 것 같다. 조금만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자기가 조금만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무섭게 달려든다.

 11.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도 본문의 유대인들과 똑같은 유형의 사람들에 의해 무너져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발에 밟히는 소금처럼 되어가고 있다. 손해 볼 줄을 모른다. 사람들을 지키지 않고 교회를 지키려고 한다.

남이 잘되는 걸 기뻐하고 축복해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세례 요한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잃고 산다. 

1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우를 범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려는 세상적인 본능에 젖어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까지 죽이는 유대인들의 우를 범하기가 쉽다. 

 기독교의 정신을 우리가 배우지 않았는가? “너는 복이 될지라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기 위하여 도리어 자기를 내어놓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 아닌가? 

 우리가 이 정신을 기억하고 세례 요한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고백을 마음에 품고 산다면,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될 줄 믿는다.

– 예수님 식대로 살기,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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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창세기 12장 2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이사야 58장 11절

† 기도
하나님, 세상 사람과 똑같이 남을 죽이고 비방하고 발로 짓밟고 내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나 잘살겠다고 남 죽이는 삶 살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죽일 줄 아는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사람도 살리고 하나님 나라도 살리는 자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길 원하십니다. 나 잘살겠다고 남 죽이는 삶 살지 맙시다. 남 살리기 위해 자기를 죽일 줄 아는, 손해보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하여 사람도 살리고 하나님나라도 살리며, 하나님의 이름도 높여드리는 삶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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