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돈’을 가르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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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TV를 보다가 ‘비와이’가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리포터분이 작년보다 수입이 좋아지셨나요? 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네. 작년에 비해 20배이상 올랐고 저는 수입을 9:1로 주님과 나누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걸 들었습니다. 

방송에서 당당히 말하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경제가 어렵고 힘들어서 돈벌기 어려운 세상이니
손안에 들어온 것은 꽉 움켜쥐라고 말하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재정의 주인이 주님이시고 손을 펼쳐 흘려 보낼 때 주변을 주님의 빛으로 밝히 비취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_잠언 28:25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돈’을 가르치려고 노력해왔다.
입으로, 말로 가르친 적은 거의 없다.
부족하지만 생활 속에서 내가 먼저 삶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해왔다.
감사하게도 그와 같은 교육은 실패하지 않았다.

1998년 말, 영락교회 협동목사로 부임하였다.
교회는 협동목사인 나에게 담임목사와 똑같은 대우를 해주었다.
특히 교인들이 많이 반가워해주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적지 않은 교인들이 이런저런 선물들을 보내주셨다.
워낙 교인들이 많은 교회다 보니 그 선물들이 집에 가득 차게 되었다.
솔직히 그 풍요로움과 풍족함이 좋았다.
특히 평생 가난하게 살아오셨던 어머니가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어느 날 아내가 걱정을 하였다.
선물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아이들이 고마운 줄을 모른다고.
귀한 줄을 모른다고.귀한 것이 없다고.
그 아내의 걱정이 하루 종일 내 귓가를 맴돌았다.
‘귀한 줄을 모른다고?’
‘귀한 것이 없다고?’
그렇다면 그건 가난함이었다.

귀한 것이 없어서 귀한 것이 없는 가난보다 너무 귀한 것이 많아서 귀한 것이 없어진 가난은 아주 질이 나쁜 ‘악성 가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풍요로움이 내 사랑하는 자식들을 ‘악성 가난뱅이’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큰아이가 열한 살, 둘째가 아홉 살, 막내가 일곱 살 때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그 걱정을 이야기하며 나누었다.
큰 아이가 기막힌 제안을 하였다.
“너무 많아서 가난해졌다면, 없애면 되잖아요.”
우리는 그 기막힌 생각을 당장에 실천으로 옮겼다.

집에 들어온 모든 선물을 봉투에 담고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신문배달 청년, 미화원 아저씨, 심지어는 육교에서 구걸하고 있는 걸인들에게까지 다 나누어 드렸다.

저녁을 먹고 난후 아내에게 사과 한쪽 먹자고 하였다.
그랬더니 아내가 집에 사과가 없다고했다.
우리 먹을 것 조금 남기고 돌렸어도 되는데 식후에 먹을 것이 없게 다 없앴던 것이다.

사과가 없으니 더 먹고 싶었다.
그래서 집 앞에 가게에 가서 사과 몇 알을 사다가 먹었다.

그때 큰아이가 소리를 쳤다
“야, 이제 우리도 부자다.”
“뭐가 부자냐? 사과 한 알 없는데.”
큰아이가 대답하였다.
“사과가 귀하잖아. 이제 우리 집에도 귀한 것이 있게 되었잖아.”

그날 우리 집의 우발절인 퍼포먼스는 매우 중요한 교육적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깨달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지난친 풍요로움이
우리를 오히려 가난하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가난은 ‘보통 가난’이 아니라 아주 질이 나쁜 ‘악성 가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지나친 비만이 우리 건강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큰아이가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다이어트’였던 것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체중을 조정해야 하듯, 보다 더 중요한 건강을 위해 우리는 ‘부’를 조정할 줄 알아야만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진정한 부요함은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돈’을 가르칠 때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핵심은’몫’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돈을 벌었어도 그게 다 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 돈 중에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내 몫’이 있다.
그러나 그 돈 중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고 나눈 ‘십일조’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십일조를 제일 먼저 가르쳤다.
그리고 하나 더 가르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번 돈 중에 ‘가난한 이웃의 몫’이 있다는 것이다.
<마하나임>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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