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을 하나씩 살폈으나 하나님께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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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 앞에서 롯의 선택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비옥하고 살기 좋아 보이는 곳을 선택한 그의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이미 성경을 통해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성경 속 이야기는 이처럼 명확한데 정작 나의 삶에서는 그것을 놓치는 실수를 번번이 합니다.
교육 문제는 이웃집 공부 잘 한다는 아이의 엄마에게, 이사 문제는 부동산에 능통한 사람에게 물어보며 정보력에 내심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하나씩 꼼꼼히 살피며 힘과 노력을 들였지만 정작 주님의 뜻은 묻지 않고 간 그길은 불순종의 길이었을 뿐임을 깨닫습니다. 사람에게 묻기 전 주님 앞에 나의 무릎을 드려 주님의 음성 듣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교차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기회를 얻는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여전히 아브람과 사래였을 때 애굽에 내려가면서 교차로를 만났다.
이 부부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교차로에서 방향을 잘못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12장 10-20절에 나온다.

교차로에 서서 이들은 길을 하나씩 살폈으나 어느 쪽이 좋고 선한 길인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의심이 가득했다.
‘만약’이 의심 가득한 생각 하나하나의 출발이었다. 그것이 두려움을 낳았다.

아브라함은 부부로서 곧바로 애굽으로 내려가면 자신이 살해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제 누이입니다”라는 더 안전해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면 목숨도 보존하고 사라 덕에 대접도 잘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가 아닌 애굽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길을 선택한다면 아브라함은 굶어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잡념이 결정을 방해한다.
그 시대에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 틀림없었던 사라의 빼어난 미모가 이들의 교차로에서 잡념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녀의 아름다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택하길 원하시는 길을 구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 사람이 제 누이입니다”라는 길을 선택해 애굽으로 내려갔다.
결과는 두려워했던 그 어느 ‘만약’보다 좋지 않았으며 사라는 곧바로 왕궁으로 불려 가 바로의 새 아내가 될 판이었다.

코리 텐 붐은 <주는 나의 피난처>(The Hiding Place)에 이렇게 썼다.
“하나님나라에 ‘만약’이란 없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피난처다. 주 예수님, 나를 당신의 뜻 안에 두소서! 내가 당신의 뜻 밖에서 헤매고 다님으로써 미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 뜻 밖에서 헤매고 다녔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그분의 백성의 부모(시조)가 되게 하고, 자신이 보호하는 번성케 할 부부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약속에 만약이란 없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에 만약은 없다.
언제라도 삶의 잡념에 잠겨 ‘이렇게 되면 어쩌지?’를 우리의 길잡이로 삼을 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손길을 놓치게 된다.
언제라도 의심에 집중하면 그분의 뜻 밖에서 헤매게 되고, 그 결과는 매우 비참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에 만약은 없다

약속하신 분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방향은 단순한 우회로 이상으로 이들을 인도했다. 절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을, 영원히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할 민족이 태어나게 하는 잘못된 결정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빙빙 돌기만 하는 긴 기다림의 여정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여러 교차로를 만날 것이다.
그랄 땅에 들어갔을 때, 아브라함이 보기에 사라가 이전에 비해 훨씬 늙었으나 여전히 아름다웠기에 그는 이전에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 일어나 생각이 흐려졌다(창20장).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뜻 밖에서 헤맸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옛날의 ‘만약들’속에서 헤맨다.

당신은 기다림의 풍경을 지난 자신의 여정에서 어떤 교차로를 만나고 있는가?
그 교차로에서 어떤 거짓 두려움의 안개를 보았는가?
옛날의 만약들에 대한 옛날의 조언, 애초에 효과가 없었던 그 조언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당신이 기다리는 중에 교차로를 만났을 때, 어떤 만약들이 당신의 주의를 흩뜨려 놓았는가?

우리는 인간이기에 기다리면서 옛날의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두 번이나 선택한 “이 사람이 제 누이입니다.”라는 길에서 약속에 충실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하고 인도하셨듯이 당신에게도 그러하실 것이다.

당신의 영혼의 쉼을 얻는다는 말은 최종 목적지에 이른다는 뜻이 아니다.
여정에서 영혼이 쉼을 얻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영혼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중에 쉼을 얻었다.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서 쉼을 얻는가?
<가장 힘든 일, 기다림> 데비 에커먼p204